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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누가 끊으리요?
설교본문 엡 8:26-39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01-21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0121m.mp3

20180121m

롬 8:26-39

누가 끊으리요?


(롬 8:26-39, 개정)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특히 예정론이라는 교리의 비중이 크다고 알려진 장로교 신자로서 평소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과연 선택받은 사람인가, 내가 과연 하나님의 백성으로 예정된 사람일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꾸만 본전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가 지금 열심히 예수를 믿어도 잘못 살면 언젠가 버림받을 것 아닌가? 내가 지금 예수를 안 믿어도 택함 받았다면 언젠가는 믿고 죽을 게 아닌가? 그러면서 너무 일찍 믿어 손해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혹시라도 이렇게 생각하고 계신다면 오늘 설교가 답이 되기를 바랍니다. 


28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는 무슨 뜻입니까? 교리적으로 분석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란 인간의 자유의지를 말하고,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뜻합니다. 내가 과연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든 자인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사람인가를 궁금해 하거나 불안해 할 것은 없습니다. 당장 자기가 직접 확인해 보면 됩니다. 그것을 어떻게 검증할 수 있습니까? 


28절 말씀에 대입해 보면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와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가 별개가 아닙니다. <곧>이란 부사가 이 둘을 하나로 묶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예정된 자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이것은 뫼비우스의 띠와 같습니다. 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고, 분리할 수 없습니다. 안과 밖이 하나로 연동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하나로 묶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정말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든 자인가를 알고 싶다면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를 자문해 보면 됩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답할 수 있으면 의심의 여지없이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입니다. 우리는 단지 그렇게 믿을 뿐이지 하나님을 상대로 직접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나의 하나님 사랑을 통해서는 얼마든지 검증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나의 하나님 사랑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지 않으셨다면 절대 내가 하나님을 구주로 고백할 수 없습니다.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다 남달리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해서 택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아니라 창세 이전에 이미 하나님이 나를 당신의 자녀요 백성으로 택해 주셨기에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놀라운 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28절 하반절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가 살아가며 겪고 당하며 만나는 모든 사건이 결국 내게 도움이 되고 선이 되고 복이 되고 아름다운 결말이 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죽은 나무에게는 바람이나 비 등 모든 것이 더 빨리 썩고 분해되게 합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나무에게는 바람과 비가 다 도움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37절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서 우리가 모든 것에 대해 넉넉히 이기게 하십니다. 


우리가 넉넉히 이길 수밖에 없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26절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이길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데 우리가 질 수 있겠습니까? 32절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 아버지가 자녀인 우리를 위하시기에 우리는 이깁니다. 당신의 외아들마저도 내주신 분이 우리에게 무엇이 아까워서 주시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우리가 반드시 이기고, 모든 것이 선으로 결말이 납니다. 34절도 보십시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이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기에 우리는 이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모든 것이 선으로 결말이 납니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떤 문제를 이깁니까? 우선 우리의 현실적 장애와 결핍을 이깁니다. 32절 하반절입니다.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올해도 살아가기에 그리 쉬울 것 같지는 않습니다. 너무 서둘러 현실에 투항하지 마십시오. 합리적이고 상식적으로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소중한 외아들까지도 우리에게 내주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의 현실적 필요인 모든 것을 넉넉히 허락하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이기게 하십니다. 


다음은 죄 문제입니다. 올해도 우리가 치열하게 싸워야 할 대적은 죄입니다. 그 싸움에서도 하나님은 우리가 이기게 하십니다. 33절 이하입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우리가 죄를 지으면 마귀가 곧바로 정죄하고 참소합니다. 그렇게 마귀는 우리를 의기소침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죄인이 아닙니다. 죄를 안 지어서 죄인이 아닌 게 아니라 죄를 지어도 더는 죄인이 아닌 것입니다. 이 부분을 우리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용납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짓고 사는 우리를 의인이라 불러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교리적으로 칭의(稱義, justification)라고 합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칭해주십니까? 주님의 십자가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실상 우리는 죄인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의인이라고 불러 주십니다. 주님이 우리의 원죄와 자범죄의 값을 속량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33절 이하의 말씀이 중요합니다.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누구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죽음을 헛되게 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더는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라 부르십니다. 우리가 짓는 죄가 우리를 망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온갖 썩은 퇴비가 나무에게 자양분이 되듯이 우리가 짓는 죄마저도 우리에게 복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장래 일입니다. 그게 어떤 것이든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이기게 하십니다. 사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이것입니다. 내일에 대한 불확실성이 우리를 불안에 떨게 합니다. 취업포털인 <알바천국>이 지난 1월 5일에서 10일까지 10대에서 30대까지 1608명에게 ‘새해 운세를 보셨냐’고 물었습니다. 놀랍게도 응답자의 91%가 봤다고 합니다. 그 빈도를 물었더니 1년에 한 번 25.5%, 반 년에 한 번이 25.1%, 한 주에 한 번이 13.3%, 한 달에 한 번이 13.6%, 매일 본다는 사람이 10.8%였습니다. 우리 사회가 새파랗게 젊은 사람들까지도, 어린아이까지도 이렇게 내일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장래의 불확실성도 그것이 주는 불안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38절 이하입니다.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심지어 사망도 천사조차도, 사탄도 마귀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장래 일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이깁니다. 세상에서 이보다 더 지독한 결말, 더 완벽하고 무서운 결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많은 사람이 패배합니다. 그것은 투항해서 그렇습니다. 


죄나 현실적 문제나 장래의 문제 때문에 불안에 떨지 마십시오. 바울처럼 우리가 이긴다고 담대히 외치십시다. 올해도 모든 것이 승리로 끝나는 은혜와 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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