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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야베스의 기도
설교본문 대상 4:9-10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01-07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0107m.mp3

20180107m

대상 4:9-10

야베스의 기도


(대상 4:9-10, 개정) [9]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이 본문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야베스의 기도입니다. 이것이 올해 우리 교회의 비전이자 주제 요절입니다.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내 지역을 넓히시고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욥기에 나오는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말씀과 함께 신자들의 사업장이나 가정에 많이 붙어 있습니다. 야베스의 기도가 유명해진 것은 지난 2000년 미국에서 출간된 브루스 윌킨스의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만 1000만 권이 팔렸고,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책입니다. 이 책이 쓰나미처럼 한국 교회를 쓸었습니다. 우리는 올해 우리 교회의 비전과 주제로 삼았습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도 야베스의 기도를 통해 그런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9절 하반절입니다. “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라는 이름은 좋은 이름이 아닙니다. 그 뜻은 고통, 가난, 괴로움, 불행을 가리킵니다. 아마 어머니가 그를 출산할 때 난산했거나, 당시 환경이 가난했거나, 그가 유복자로 태어났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자식의 이름을 지으며 야베스의 모친은 제 아들 이름을 불행이라고 지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그랬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 자식이 나중에는 이렇게 됩니다. 9절 상반절입니다.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는 자신의 운명에서 온 불행이나 형편과 처지에서 온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는 부모나 하나님을 원망하기보다 큰 비전을 품고 기도했습니다. 귀중한 자는 더 존경받고, 부유한 자라는 뜻입니다. 


그의 성공 비결이었던 그의 기도는 어떠했습니까? 그의 기도는 절절하기도 하지만 그의 기도 내용이 오늘 우리의 소원이고 바람이라는 데서 우리는 공감하게 됩니다. 야베스는 자신의 지역을 넓혀 달라는 기도부터 합니다. 그는 태어날 때도 불행했습니다만, 그가 기도를 드릴 당시도 그의 처지가 궁색하고 협착했던 것 같습니다. 지역을 넓혀달라는 것은 그가 운신할 무대나 땅이 좁다는 반증입니다. 그게 집이든 땅이든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영역이든 그 반경을 좀 더 넓혀 달라는 것입니다. 요즘 같으면 넓은 집, 사업 확장, 내 꿈을 펼칠 무대나 시장을 달라는 것과 같습니다. 갈렙 같은 사람은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했습니다. 올해 우리 교회는 지역을 넓혀 달라는 것보다 우리 지경을 옮겨 달라고 정했습니다. 


10절 하반절입니다.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하나님이 야베스의 기도를 들었고 응답하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길르앗 야베스라는 지역 이름이 나옵니다. 아마 이곳이 야베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워싱턴은 미국 초대 대통령의 이름이자 미국 수도의 이름입니다. 야베스도 원래는 사람 이름이었는데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으사 길르앗에 있는 땅을 주셔서 훗날 그 땅을 길르앗 야베스로 부른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올해 자신의 지경을 넓히기를 바라는 분이 계십니까? 지난주에 제가 치과에 갔더니 로비 탁자에 이 기도가 적혀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소망이 있으시면, 꼭 야베스의 기도를 자신의 기도로 삼으십시오. 우리 교회처럼 지경을 옮겨 주시기를 원하거나, 지금의 지경을 처분하기를 바라거나, 지금보다 더 유리한 환경과 공간을 원하시는 분은 야베스의 기도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다. 하나님이 올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사 각자가 원하는대로 해주시기를 빕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게 복잡하고 난감하고 난제라 생각되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계산입니다. 하나님이 손을 쓰시면 모든 것이 형통합니다.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다는 응답을 체험하시기를 빕니다. 


다음은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환난은 지금 겪는 고난과 고통을 가리킵니다. 야베스도 기도할 당시 현실적인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환난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 삶에 환난을 주실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늘 겸손히 살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의 무능을 인식하고 늘 당신께 기도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환난을 주십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장 8절 이하에 이렇게 말합니다.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하나님은 우리가 자기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게 하시려고 환난을 주십니다. 우리는 환난이 없으면 금방 잘난 체 합니다. 환난이 없으면 우리 가운데 누가 기도하며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겠습니까? 기도원에 가보면 멀쩡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 환난 가운데 처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천국을 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환난이 닥치면 그것을 근신하며 기도하라는 주님의 계시로 믿고 야베스처럼 기도하며 엎드립시다. 시편에도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진다고 했습니다. 야베스도 환난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주님이 내 모든 어려움에 손을 대시면 그 순간 환난에서 벗어납니다. 환난을 벗어나게 해달라는 야베스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신 것처럼 여러분의 현실적인 환난을 주님이 평정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경제적이든 인간관계의 갈등이든 자녀문제든 사업상의 어려운 문제든 무엇이든 주님이 해결해 주시기를 빕니다. 


다음은 근심이 없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근심은 정신적인 고통입니다. 근심이 없게 해달라는 것은 마음의 평안을 바라는 기도입니다. 몸이 힘들어도 마음이 편하면 그래도 살만합니다. 마음이 늘 불안하고 초조하고 근심이 나를 짓누르면 못 삽니다. 자살하는 유명인이나 연예인들을 보십시오. 그들에게 돈이 없습니까? 명예가 없습니까? 인기가 없습니까? 그들에게 단 하나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올해도 우리가 많은 복을 받아야 하겠지만, 특별히 필요한 게 마음의 평안입니다. 근심이란 말의 히브리어는 <오추비>는 걱정보다는 불안, 허무에 가까운 뜻입니다. 솔로몬은 시편 127편에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야베스의 기도를 드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마음의 평안을 주십니다. 사람들이 갈수록 잠을 자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불안 때문에 그렇습니다. 


야베스의 기도가 얼마나 우리에게 절실합니까? 하나님이 그가 구한 것을 허락하셨다는 응답을 우리도 받아야겠습니다. 10절 상반절에 하나님께 아뢰었다고 합니다. 아뢰었다는 말이 히브리어로는 <카라>입니다. 절절히 부르짖어 호소했다는 뜻입니다. 올해 우리도 야베스처럼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복까지 누리는 복 있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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