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2021.02.20 20:28

나곤의 타작마당 (삼하 6: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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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곤의 타작마당

삼하 6:6-11


<그들이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 진노하사 그를 그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6-7절).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육신은 비록 이 땅에 사나 하늘의 영을 간직하고 사는 것이며, 오늘의 자리에서 미래의 꿈을 키우며 사는 기쁨에 다름 아닙니다. 굳이 육신의 눈으로 보지 않더라도 이미 마음으로 믿어지는 겁니다. 인간의 능력 안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들이 은혜로 거저 주어지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나라가 내 것이 되어 비록 값진 보석이 없다 해도 진정으로 풍요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껏 욕심대로 산 것이 오히려 가난한 삶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깨닫고 <더 가짐>으로부터 진심으로 자유로울 때까지는 하나님이 홀로 외로울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타작마당>은 우리에게 버림받은 지 오래고, 우리의 영혼은 <더 가짐의 욕심>으로 어느덧 거칠고 황폐해져 노쇠하고 기진한 채로 그냥 방치되어 있을 뿐입니다. 원래 오직 소유와 정복의 대상으로만 보면 하나님이 만드신 이 우주는 결코 그 본래의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도리어 문을 꼭꼭 안으로 닫아걸고 자신을 방어하려듭니다. 혹 소유에 성공한다 할지라도 그 속에 담긴 아름다운 비밀은 끝내 알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진실로 우리는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을 향해 열린 마음이 아니고서는 풀 한 포기며 짐승 한 마리 앞에서도 그냥 눈 뜬 장님일 뿐입니다. 하나님이나 자연 뿐 아니라 인간관계도 마찬가집니다. 한 인간의 진실과 만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궁극적으로 순수한 사랑입니다. 그러기 전까지는 우리는 또한 서로 타인이며 끝까지 외로울 따름입니다. 시간이 흘러 소유의 욕망이 충족되며 정복의 쾌감이 사그러들고, 이해관계의 정산이 이뤄지면 남는 것은 오직 의례적인 언사와 습관적인 일상 혹은 미련 없는 헤어짐 뿐 일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자기도 모르게 버리는 일이 무감각하게 진행되는 것입니다. 감동은 끝나고 폐허의 자리에서 서성이는 초라한 낙오병의 모습, 절대 손대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궤에 손을 대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은 웃사와 같은 운명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적용>

-다윗이 왜 분노하였을까요(8절)?

-<베레스웃사>라는 지명의 뜻(8절)은 무엇입니까?

-다윗이 왜 하나님을 두려워했을까요(9절)?


<기도>

주님, 저희는 언제나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말씀 중심으로 행동하며 살아야 함에도 저희는 늘 자신의 편리대로 해석하고 처신하며 삽니다. 그래서 때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 징계를 당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이며 웃사를 보며 더욱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저희들 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