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020.11.13 21:11

아둘람의 노래 (삼상 2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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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둘람의 노래

삼상 22:1-10


블레셋의 <가드>를 탈출한 다윗이 가까스로 찾은 곳이 바로 <아둘람> 굴이었습니다(1절). 

<아둘람>이란 <피난처>, <보호처>란 뜻의 지명입니다. 그 위치는 가드와 베들레헴의 중간으로 본래는 유다의 영토였으나 당시에는 블레셋의 지배하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곳은 바위산으로 워낙 지세가 험해 사울의 군사들이 쉽게 추적하거나 접근하지 못할 뿐 아니라 바위 동굴이 많아 도망자의 은신처로서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으나 다윗은 이제 사울에게 몰리고 몰려 막다른 골목에까지 다다른 딱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과거를 되씹어 보는 그로서는 지금까지의 삶이 모두 무의미한 것으로 변해버리는 것만 같은 칠흑 같은 좌절감을 느꼈을 겁니다. 이제 시간은 오직 사울 편이고, 자신은 히브리 역사의 대세에서 철저하게 뒤처지는 듯한 괴로움에서 벗어나기가 몹시 어려웠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천혜의 은신처에 몸을 숨기기는 했지만 사울의 군대가 언제 들이닥쳐 생명이 위태롭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장기 피신에 필요한 식량 또한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둘러보아도 모든 조건이 그에게는 최악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편 57편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부른 그의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1절). 그러다 돌연 7절부터는 그의 어조가 급격히 달라집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누가 보아도 새벽을 깨우기는커녕 도리어 밤의 어두움에 삼킴을 당할 것 같은 그가 어디에서 이런 힘이 솟아난 걸까요?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2절).

그래서 다윗이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자기보다 더 애통하고 환난 당해 고통하는 사람들이 그 아둘람의 굴을 찾아 모여들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둘람의 굴은 이제 탄식과 좌절의 자리가 아니라 생의 새로운 용기를 다지는 재기의 터로 바뀌어 갔던 것입니다. 


<적용>

-시편 57편을 한 번 정독해 보십시오.

-옛 이스라엘 지도에서 <아둘람>을 특정해 보십시오.

-본문 5절에 나오는 선지자 <갓>에 대해 아는대로 적어 보십시오(삼하 24:11~, 대상 29:29).


<기도>

주님, 다윗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아둘람 굴을 찾은 환난 당한 자들, 원통한 자들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 없었던들 그 곳은 그냥 산적이나 강도떼들의 소굴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마음속에 역사에 대한 빛나는 비전이 살아 움직였기에 그 어두운 굴속에서 새벽을 깨우는 노래와 기도의 함성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부디 낙심과 탄식으로 어둡고 음습한 저희의 삶의 자리도 은혜의 노래가 샘솟는 아둘람의 굴이 되게 해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