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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옵소서!

삿 16:23-31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28절).

삼손은 나실인임에도 허랑방탕하게 살다 딱 한번 죽음 앞에서 비로소 그의 힘과 뜻을 모아 맨 처음의 목적에 집중하여 거사했습니다.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소서!> 이것은 그의 마지막 소원이자 그의 본래의 사명에 복귀하고자 한 이스라엘의 전설적인 영웅 삼손의 최후기도였습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목숨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30절).


삼손은 12명의 이스라엘 사사 가운데서 유일하게 적에게 잡혀가 산화한 비운의 사사입니다. 그러나 홀로가 아니라 수많은 블레셋의 방백들과 함께 죽었습니다. 장렬한 그 죽음으로 블레셋에 대한 원수를 대대적으로 갚은 셈입니다. 

주님도 삼손이 다곤 신전의 기둥에 결박된 것처럼 그렇게 십자가의 형틀에 못 박혀 죽음을 맞으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배반당하시고 하나님마저도 외면하신 듯 침묵하고 계신 그 최후의 순간에 삼손이 <이번만 강하게 하소서!>하고 한 것처럼 주님도 피곤과 절망, 아픔 속에서 마지막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이것은 복수를 위해 최후의 소원을 빌었던 삼손의 그것과는 다른, 오히려 사랑의 철저화이며 이쪽과 저쪽의 불화 사이에 자신을 화해의 제물로 바치는 중보자의 탄원이었습니다. 


이렇듯 때리는 자와 맞는 자 가운데 서서 맞는 자의 매를 자신의 온몸으로 대신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그리스도의 정신입니다. 주님의 그런 화해의 죽음이 바로 부활을 가져온 것입니다. 

삼손의 복수의 죽음은 배타적인 민족의식을 낳았지만 주님의 부활은 전혀 새로운 미래를 개막했습니다. 

그것은 때린 자나 맞은 자가 함께 새로운 존재가 되어 참여할 부활의 미래이며 궁극적인 하나님 나라의 비전입니다.


<적용>

- 본문의 삼손과 희랍신화의 프로메테우스와 복음서의 주님의 최후를 비교해 보십시오.

- 고린도전서 15:55-57 말씀을 옮겨 적어 보십시오.

- 삼손의 생애에 대한 당신의 소감을 간략히 적어 보십시오.


<기도>

주님, 삼손의 최후는 복수고 프로메테우스의 최후는 배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용서와 화해셨습니다. 

삼손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렸지만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그 파기된 언약을 회복하사 저희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상화 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희생의 비밀과 신비를 깊이 깨닫게 하사 삼손의 최후가 아닌 주님의 대속의 죽음에서 저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와 은총을 바르게 깨닫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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