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2020.02.01 17:54

기생의 아들 (삿 1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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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의 아들

삿 11:1-11


<길르앗 사람 입다는 큰 용사였으니 기생이 길르앗에게서 낳은 아들이었고>(1절).

입다는 조선시대 의적 홍길동처럼 서자 출신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서자와 적자의 차별이 심했는데 고대 이스라엘 역시도 그랬습니다. 입다는 누구보다도 서자로서의 설움과 차별을 많이 겪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그런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와 같은 불행한 처지의 사람들을 규합, 힘을 길렀고 마침내는 암몬 자손의 침공으로부터 나라를 구해 훌륭한 지도자의 반열에까지 오르는 입지전적인 인물이 됩니다.

 

<... 그 아내의 아들들이 입다를 쫓아내며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2절).

그래서 쫓겨난 몸이었지만 그는 결코  그대로 주저앉아 절망할 수가 없었습니다. 환난과 원통함으로 가슴을 치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로 몰려들었기 때문입니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3절). 

따라서 그는 자신을 쳐다보고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희망을 걸고 삶의 새로운 출발을 꿈꾸는 사람들 앞에서 더 이상 의기소침하여 탄식하고 있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로써 그가  은신한 요단강 건너편 <돕 땅>은 어제의 탄식과 좌절의 자리가 아니라 생의 새로운 용기를 다지는 희망의 터로 바뀌어져 갔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것은 무리가 모였다고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입다의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잡류>에 대한 사랑과 역사에 대한 빛나는 비전이 살아 움직이지 않았던들 성경이 그를 <큰 용사>라고 부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로 모여든 무리들도 강도떼 이상이 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때로 사는 일이 힘들고 낙담이 되어 피신하듯 돕 땅을 찾게 되더라도 거기에 그냥 주저앉기보다는 한 가닥 소망을 걸고 희망의 내일을 노래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둡고 음습한 돕 땅도 은혜가 샘솟는 삶의 새로운 시작을 준비되는 자리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적용>

- 본문 6절 말씀을 보며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자신을 내쫓은 이복형제들과 대결하지 않고 인내로 자기의 삶을 개척한 입다를 보며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본문 11절을 보며 입다의 신앙에 대해 말씀해 보십시오.


<기도>

주님, 고난을 하나님의 징계나 저주로 생각하며 비관이나 체념에 빠지는 사람은 하나님께 쓰임 받거나 성공하지 못합니다. 오직 그 고난 뒤에 있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믿고 입다처럼 묵묵히 연단을 견디고 이기는 자만이 하나님의 그릇과 일꾼으로 쓰임 받을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큰 용사>였던 입다에게서 저희들 많은 것을 깨닫고 또 배우게 해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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