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018.11.03 10:43

십일조를 드리라 (신 14: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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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를 드리라

신 14:22-29


<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22, 28-29절).


율법 시대가 아닌 이 복음시대에도 십일조는 여전히 유효한가 하는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첨예한 토론의 주제가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님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18)고 하셨는데 우리는 이 말씀을 십일조에 대한 이해와 원칙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비록 율법적인 구속력은 갖지 않을 지라도 십일조의 원리와 그 정신 만큼은 더 철저하고 더 완전해졌다는 것입니다. 


원래 은혜는 율법보다 더 강력하고 사랑은 강제보다 더 무서우며 성령은 육신보다 더 신령한 법입니다. 구약시대 때는 십일조가 율법이었으나 신약시대, 복음시대의 십일조는 자발적인 감사며 사랑이며 신앙고백입니다. 구약시대의 율법적 기준에서는 수입의 십분의 일, 토지 소산에 십분의 일이 십일조, 즉 하나님의 것이었으나 복음시대의 십일조는 더 이상 십분의 일이 아니라 십분의 십입니다. 왜냐하면 내 소득과 내 소유의 십분의 십이 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복음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십분의 일이 아니라 십분의 십을 바쳐야 그게 진정한 감사요 내 가진 것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을 진심으로 인정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인 만큼 실제 현장에서는 십분의 일을 바치며 십분의 십이 다 하나님 소유요 나는 다만 하나님의 부와 재산을 관리하는 청지기임을 실천적으로 고백하는 결단이 바로 <십일조 내기>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분명한 것은 십분의 일은 율법이고, 십분의 십은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십분의 일을 바치지만 그것은 곧 십분의 십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실천적 결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적용>

-당신은 현재 십일조를 하십니까?

-당신이 이해하는 복음적인 십일조 정신은 어떤 것입니까?

-십일조는 율법시대의 산물이므로 폐기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당신은 어떤 입장이십니까?


<기도>

주님, 십일조에 대한 이해와 해석들이 분분합니다. 부디 저희로 하여금 하나님 뜻에 합당하게 가장 복음적으로 재해석하고 또 실천할 수 있도록 성령으로 역사해 주시옵소서. 맞습니다. 구약시대 때는 그게 율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인 감사요 또 부와 소유에 대한 신앙고백이요 이웃사랑에 대한 실천적 결단임을 깨닫게 하사 더 이상 누구도 십일조 때문에 시험에 들거나 실족하는 일이 없게 해주시옵소서. 십분의 일만이 아니라 십분의 십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며 신실한 청지기로 살아가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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