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29 13:49

다시 산 사람(행 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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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산 사람
  행 9:1-9

  만약 바울이라는 인물이 초대 그리스도교회의 형성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그리스도교의 모습은 과연 어떠할까요. 그만큼 그는 2천년 교회사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인간 바울이 오늘 우리의 관심을 더욱 자극하는 것은 그가 예수님 시대의 사람이면서도 예수님의 직접적인 제자가 아니었음은 물론이고 심지어 예수님 생존시에는 한번도 그를 만난 것 같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열렬한 교도로서 그리스도교 박해의 선봉에 나섰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돌변해서 전 생애, 그리고 목숨까지도 오로지 그리스도를 위해 바쳤다는 사실에 잇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은 도대체 그가 어떤 사람이었으며, 어떻게 해서 그토록 정열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 하는 점들을 함께 추적해 보고자 합니다.

  바울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은 비교적 많습니다. 우선은 그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여러 편지들이 보다 직접적인 자료들입니다. 신약성서 전 27권 가운데는 그의 편지가 무려 13권이나 되는데 실은 그 외에도 분실된 여러 통의 현지가 더 있었고, 또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와 교환한 편지라는 것도 약 8통 가량이 부분적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그러나 그것은 그다지 믿을 만한 문서가 못되는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참고할 수 있는 자료는 역시 누가가 쓴 사도행전입니다. 사도행전은 전체가 28장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후반부 약 15장 정도가 전부 바울의 선교 행적만을 다루고 있어서 그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자료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바울의 편지들은 대개가 주후 50-60년 사이에 씌여진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서들 보다도 훨씬 먼저 기록된 셈입니다.
  사실 바울은 자기의 생애에 관해 그다지 많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우선 누구보다도 자기가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의식에 투철했고, 또 하나는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의 자기의 삶을 송두리째 대변이나 소변처럼 무가치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그가 단편적으로 자기 생애에 관해 말한 것들도 실은 그가 전하는 복음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써 부정적인 의미로 언급한 것에 불과한 것들입니다.
  그는 우선 자기가 히브리인이며 이스라엘의 12지파 가운데서 베냐민의 족속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그가 언어상으로나 혈통상으로 아무런 흠이 없는 정통 유대인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그는 태어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으로서 우리는 그가 율법과 전통에 충실한 가문에서 출생했다는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그는 당시 로마의 판도였
던 길리기아 지방의 수도인 다소에서 태어났고, 또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는데 이 사실도 그의 가정이 중류이상 상류의 생활수준이었음을 반영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유대 경건주의자들의 전통에 따라 일찍부터 천막짓는 기술을 익혀서 노동으로 살아갈 수 있는 생활수단을 갖추었습니다. 또한 그는 당대의 대 학자였던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학문을 했습니다.

  그 당시의 유대교에는 크게 두 가지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유대교 전통을 문자 그대로 고집하는 보수적인 계열이고, 다른 하나는 유대교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개혁파가 그것이었습니다. 보수파는 주로 예루살렘을 중심한 본토 사람들의 입장이었고, 개혁파는 소위 ‘디아스포라들’, 즉 외국에 나가서 살고 있던 유대인들의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바로 이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서 로마의 판도에서 태어났고, 헬레니즘 문화를 호흡하고 자라났으며, 또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희랍어를 유창하게 구사햇고, 희랍철학에도 정통했습니다. 문장으로 보나 사상적인 전개로 보나 확실히 그는 당대의 일급 지성인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결코 유대교 밖에는 모르는 협소한 사람은 아니었던게 분명하나 그렇다고 그가 자라난 지역의 풍토에 무조건 적응하며 따랐던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철저한 율법주의자들로 구성된 바리새파의 일원이었다는 사실로 보더라도 집작이 가는 일입니다.바로 그래서 그리스도교의 박해에도 앞장섰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교가 유대교 전통에 위배되는 이단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리스도교에 대해 분개한 이유는 대개 두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유대교는 율법의 종교였기 때문입니다.

  율법이란 원래 ‘토라’라고 해서 모세 5경에 한한 것이었는데 이것이 후에 바리새파의 손에 와서 그 영역이 확대되어 예언서들은 물론이고 유명한 랍비의 율법 해석서까지도 포함하며 일종의 생활규범이 되었습니다.좋게 보면 이것은 율법의 생활화입니다. 그러나 그것에 강권이 발동되면 사람을 구속할 뿐 아니라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사람들과 못 지키는 사람들로 갈라 놓는 역할을 하게 마련입니다. 유대인들이 말하는 의인과 죄인이란 개념은 바로 이 기준에서 나온 판단입니다.
  그러므로 유대교는 공로의 종교입니다. 사람이 율법에 따라서 얼마나 선한 공로를 세웠나 하는 것이 곧 구원을 측정하는 잣대가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반해 그리스도교에서는 공로로서나 혹은 업적으로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를 믿음으로써 구원받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되면 율법을 지킴으로써 의롭게 되고 구원받게 된다는 유대교의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다른 이유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메시아에 대한 주장 때문이었습니다. 실상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결코 명망있는 부류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교 운동이 처음 일어난 곳도 대성전이 있는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이 아니라 잡다한 것이 무질서하게 섞여 있었던 갈릴리 지방이었습니다.
  니체가 초기 그리스도인들을 낙오자, 무식한 사람, 억눌린 자, 건강하지 못한 자들이었다고 하면서 초대 그리스도교를그런 자들로 뭉쳐진 폭도들의 운동이었다고 했는데, 당시의 바울이나 유대교도들도 실은 그렇게 보았던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이런 천박한 죄인들에게 메시아가 보냄 받았다는 사실은 감히 상상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을 중심한 유대교
의 권위를 전적으로 무시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도 오직 의인의 하나님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못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졸지에 죄인의 하나님으로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잇어서는 만약 하나님이 죄인을 위한, 죄인의 하나님이라면 지금까지의 그들의 종교적 가치관, 세계관이 다 무너지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그같은 주장에 바로 자기의 삶의 뿌리인 유대교의 존폐 문제가 달렸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토록 분개한 것이었습니다.
  그러했던 그가 어느날 갑자기 180도로 변해서 긜스도의 사도가 되었고, 복음전퍄의 가장 열렬한 투사가 되었다는 얘긴데, 그럼 대체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토록 급격한 변화를 맞게끔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의 회심에 관해서는 사도행전 9장과 22장, 그리고 26장에 각각 기술되어 있는데, 그 세 곳의 내용이 다 조금씩 다릅니다. 그러나 학자들은 대개 9장의 기록을 원형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 의하면 바울이 다마스커스에 숨어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기 위해 가는 도중에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주여,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바로 이러한 극적인 사건이 그를 굴복시켰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는 다마스커스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것입니다. 부활한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또 그로부터 직접 사도의 사명을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 경험을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경험했던 다른 사도들의 그것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그가 당시 다마스커스 도상에서 본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에는 그가 어떤 강력한 광채를 보고 눈이 어두워졌다고 했습니다.l 그러나 정작 바울 자신은 그 사건이 어떤 현상으로 나타났었는가 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다만 자기 안에 놀라운 혁명이 일어났다는 사실만을 문제 삼습니다. 이날까지 자랑하며 자기의 삶의 보람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업적을 해로 여기게 되었고, 그 모든 것을 오물처럼 여길 만큼의 가치관의 변혁이 일어났다는 것입닌다. 그것은 그가 지금까지 박해해 온 그리스도를 알게 된 지식이 그 무엇보다도 존귀했기 때문이엇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이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며 보라, 옛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극적인 ‘회심’과 더불어 곧 이방인을 위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이방에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던 바울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후 역시 이방인을 위한 전도자가 되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사실도 우리는 지나쳐 봐서 안될 것입니다.
  이방인 전도자로서의 그의 반생은 피나는 고투의 연속이었습니다. 손수 장막을 짓는 노동으로써 생계를 해결해가며 지중해 일대를 몇 차례씩이나 도보로 돌고 돌았으며, 마침내는 세계의 수도인 로마에까지 진입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에 땅끝이라고 생각했던 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려 했으나 결국 그곳에는 가지 못하고 주후 60년 로마에서 네로에 의해 처형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전도자로서의 삶이 얼마나 어려웠던가를 고후 11장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합니다.
  “나는 노역을 많이 했고, 감옥에도 많이 갇혔고, 매는 수도 없이 맞았고 죽을  뻔한 일도 여러번 있었다. 유다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를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고 몽둥이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에 맞아 죽을 뻔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고 밤낮 하루를 꼬박 바다에서 표류한 일도 있었다. 자주 여행을 하면서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도시의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가짜 신도의 위험 등 온갖 위험을 다 겼었다. 그리고 노동과 고역에 시달렸고, 수없는 밤을 뜬 눈으로 세웠고, 주리고 목말랐으며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며 헐벗은 일도 있었다. 또한 이런 일들은 다 제쳐 놓고라도 나는 매일같이 여러 교회들에 대한 걱정에 짓눌려서 고통을 당해야 했다. 어떤 교우가 허약해지면 내마음이 같이 아프지 않겠는가? 어떤 교우가 죄에 빠지면 내 마음이 애타지 않겠는가? 영원토록 찬양 받으실 주 예수님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내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계신다.”
  아닌게 아니라 그의 전도자로서의 삶은 실로 초인간적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이나 그리스도인들로부터는 도움이나 지원은 커녕 언제나 배척되기 일쑤였고, 주의 제자도 아닌 주제에 사도 행세를 하고 다닌다며 비난만 받았습니다.
  따라서 그는 거의 단신으로 로마의 판도를 누비고 다니며 그리스도에게 미친 사람처럼 그를 전하고 다녔습니다. 그는 마치 자기가 박해하던 그리스도에게 죽음으로써 참회하기라도 하려는 듯 그 고난의 길을 가고 또 갔습니다. 그리하여 오직 그 한 몸을 육탄삼아 어둠 속을 뚫고 들어감으로써 인류 역사의 향방을 전환시킨 위대한 생을 보냈던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러한 바울의 생애를 더듬어 보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자의 삶이 과연 어떠해야 할 것인지를 새삼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