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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2w 열왕기하 29

왕하 17:1-12


(왕하 17:1-12, 개정) [1] 유다의 왕 아하스 제십이년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구 년간 다스리며 [2]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다만 그 전 이스라엘 여러 왕들과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더라 [3]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이 올라오니 호세아가 그에게 종이 되어 조공을 드리더니 [4] 그가 애굽의 왕 소에게 사자들을 보내고 해마다 하던 대로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드리지 아니하매 앗수르 왕이 호세아가 배반함을 보고 그를 옥에 감금하여 두고 [5] 앗수르 왕이 올라와 그 온 땅에 두루다니고 사마리아로 올라와 그 곳을 삼 년간 에워쌌더라 [6] 호세아 제구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고산 강 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 [7] 이 일은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애굽의 왕 바로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신 그 하나님 여호와께 죄를 범하고 또 다른 신들을 경외하며 [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규례와 이스라엘 여러 왕이 세운 율례를 행하였음이라 [9] 이스라엘의 자손이 점차로 불의를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를 배역하여 모든 성읍에 망대로부터 견고한 성에 이르도록 산당을 세우고 [10] 모든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목상과 아세라 상을 세우고 [11] 또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물리치신 이방 사람 같이 그 곳 모든 산당에서 분향하며 또 악을 행하여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였으며 [12] 또 우상을 섬겼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행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일이라



지난 주에는 남왕국 유다의 12대 왕 아하스에 관해 상고했습니다. 열왕기하 16장 2절입니다. “아하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간 다스렸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아니하고” 아하스의 아버지는 요담인데, 그는 그래도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어느 정도 정직했다고 평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들 아하스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하지 않았고, 다윗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던 왕이었다고 합니다. 아하스는 우상 가운데 잔인한 신,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통과하게 하고 심지어는 태워서 바치는 가나안의 엽기적인 신을 섬겼습니다. 다른 하나는 그는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연합군을 결성해 유다를 침공하자 앗수르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열왕기하 16장 7절을 보면 그는 앗수르 왕에게 ‘당신의 아들이요 심복’이라고 하며 비굴하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 곳간의 금은과 성전 기물을 앗수르 왕에게 바치며 도움을 청합니다. 앗수르 왕이 아람 왕 르신을 죽이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남왕국 유다를 구해줍니다. 당시 활동하던 선지자 이사야는 아하스에게 절대 그런 도움을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결국 앗수르의 노예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하스는 이사야의 권고를 수용하지 않습니다. 


이제 다시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 이야기입니다. 본문 1절입니다. “유다의 왕 아하스 제십이년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구 년간 다스리며” 호세아도 역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만, 이전 왕들만큼 악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호세아도 쿠데타로 선임 베가 왕을 죽이고 권력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상대적으로 악을 행하는 데 좀 덜했습니다. 호세아도 앗수르에 조공을 바칩니다. 3절입니다.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이 올라오니 호세아가 그에게 종이 되어 조공을 드리더니” 앗수르 왕 살만에셀은 남왕국의 아하스가 도움을 청했던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의 아들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남북 왕조가 앗수르의 2대에 걸쳐 조공을 바치며 섬긴 것입니다. 


호세아는 마침내 앗수르 왕에게서 돌아섭니다. 4절입니다. “그가 애굽의 왕 소에게 사자들을 보내고 해마다 하던 대로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드리지 아니하매 앗수르 왕이 호세아가 배반함을 보고 그를 옥에 감금하여 두고” 호세아가 막대한 조공을 바치다가 어느 날 그것을 끊고 애굽 왕에게 사자를 보냅니다. 그런데 사실은 당시 애굽도 내부 분열로 남을 도울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호세아가 애굽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애굽은 호세아를 돕지 않았습니다. 결국 앗수르 왕이 북이스라엘을 쳐들어 와서 호세아 왕을 체포하고, 사마리아 성을 3년간 포위하다가 마침내 함락시킵니다. 백성들은 앗수르의 포로가 됐는데 27,290명을 잡혀갑니다. 이 인원은 당시 사마리아 성의 1/3이나 되는 인구입니다. 포로들은 앗수르에서 노예살이를 합니다. 


본문 7-23절의 내용은 1-6절에 대한 열왕기하 저자의 해설입니다. 1-6절은 역사적 사건이고, 7-23절은 열왕기 저자가 그 사건에 대한 신학적이고 신앙적인 주석입니다. 7절이 가리키는 “이 일은”이란 것은 1-6절까지의 사건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역사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라는 것입니다. 앗수르에게 성이 함락되고, 왕은 갇히고, 많은 사람이 앗수르의 노예로 잡혀가는 비극이 어디서 온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 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보지 않고, 역사의 이면을 봅니다. 그 사건의 비밀을 캡니다. 성경은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를 이렇게 봅니다. 7절 이하입니다. “[7] 이 일은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애굽의 왕 바로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신 그 하나님 여호와께 죄를 범하고 또 다른 신들을 경외하며 [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규례와 이스라엘 여러 왕이 세운 율례를 행하였음이라” 북이스라엘에게 힘이 없어서가 아니고, 호세아가 앗수르를 배반해서가 아니라, 도움을 약속한 애굽이 외면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왕과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걷어차고 가나안 원주민들의 신을 섬겼기에 하나님이 응징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의 진실과 비밀을 잘 모릅니다. 국력이 약해서 당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약소국의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표피적인 해석일 뿐입니다. 역사의 참된 의미는 역사의 이면에 있습니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봐야 그 사건이 해석됩니다. 현실 배후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해야 그 사건과 현실이 제대로 해석됩니다. 9절 이하입니다. “[9] 이스라엘의 자손이 점차로 불의를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를 배역하여 모든 성읍에 망대로부터 견고한 성에 이르도록 산당을 세우고 [10] 모든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목상과 아세라 상을 세우고 [11] 또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물리치신 이방 사람 같이 그 곳 모든 산당에서 분향하며 또 악을 행하여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였으며 [12] 또 우상을 섬겼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행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일이라” 동양의 모든 신상들도 산 위와 푸른 나무 아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네 전통 문화입니다. 가나안 원주민들도 그랬습니다. 호세아 왕의 경우에 그런 일이 심했습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격노를 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이 망한 사연을 잘 모릅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기 때문입니다. 


부디 한 나라가 위기에 빠지고 외적에게 당하고, 성이 함락되고,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는 그런 현실 이면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놓치지 맙시다. 오늘날 우리가 현실과 역사를 해석할 때도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진정한 의미는 그 배후에 있습니다. 거기에 작동하는 하나님의 뜻을 잘 살피고, 말씀에 비추어 해석할 때 답이 나옵니다. 북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한 본문의 말씀이 우리에게 깨달음과 도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 사정도 이래저래 힘듭니다. 우리의 이러한 현실과 역사에도 하나님의 뜻이 숨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일에 좀 더 투명한 영성으로 진지하게 접근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