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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4w 열왕기하 9

왕하 5:15-19


[15]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 [16]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 앞에서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나아만이 받으라고 강권하되 그가 거절하니라 [17] 나아만이 이르되 그러면 청하건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18]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19] 엘리사가 이르되 너는 평안히 가라 하니라 그가 엘리사를 떠나 조금 가니라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 나병에 걸려 고통을 당하다가 이스라엘의 계집종의 말을 듣고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사환 게하시를 통해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하라고 했습니다. 나아만이 그냥 오지 않고 각종 선물과 군대를 이끌고 왔는데 홀대하면 어떻겠습니까? 나아만도 자기 나라에 요단강보다 훨씬 좋은 강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나아만의 부하가 병이 낫는다면 더한 일도 할터인데 요단강 가서 일곱 번 목욕하는 게 무엇이 어렵습니까? 라고 권합니다. 나아만이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하자 그의 살이 어린아이의 살처럼 되었습니다(14절). 15절을 보십시오.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 좀 전에는 엘리사가 뛰어나오지 않았다고 노발대발하더니, 지금은 제발로 엘리사를 찾아와 당신의 종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나아만이 가지고 온 각종 선물을 받아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런 것 때문에 한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자기는 하나님을 섬기는 선지자이지 종교 장사꾼이 아니라고 합니다. 나아만은 가지고 온 예물을 그냥 가지고 돌아갑니다.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두 가지를 부탁하며 양해를 구합니다. 하나는 17절입니다. “나아만이 이르되 그러면 청하건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그가 왜 흙을 구했을까요? 자신이 이스라엘에서 체험한 기적을 기념하며 이스라엘의 흙을 가지고 아람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한 제단을 만들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나아만이 180도로 변했습니다.


나머지 한 가지는 18절입니다.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림몬은 아람의 신입니다. 림몬은 고대 근동에 널리 퍼져있던 폭풍의 신 하닷과 같은 신이었습니다. 그래서 림몬의 본디 이름은 하닷림몬입니다. 추석이 다음주인데 올해도 나아만의 이런 상황에 놓은 신자가 많습니다. 나아만과 같은 딜렘마에 빠지는 경우가 잦습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제사상 앞에서 절해야 하는 현실 말입니다. 그래서 절하면서도 속으로는 기도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나아만의 심경이 바로 이겁니다. 


그렇다면 나아만의 이런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엘리사는 어떻게 반응하였을까요? 19절입니다. “엘리사가 이르되 너는 평안히 가라 하니라 그가 엘리사를 떠나 조금 가니라” 무슨 뜻입니까? 현실에 적당히 타협하며 살라는 뜻입니까? 그런 뜻이기보다는 엘리사가 현실을 과소평가하지 않았다는 게 보다 적절합니다. 나아만의 입장을 최대한 이해했다는 뜻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어제까지 이방 아람의 군대장관으로 왕과 함께 국가신 림몬을 섬기던 사람이 개종했다고 모든 국가의식을 전면 거부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분명히 나아만이 이제부터 여호와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고 하면서 여호와께만 예배하겠다고 흙까지 가져가겠다고 했습니다. 나아만의 이런 중심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나머지 형식적인 것들은 차차 정리하고 고쳐 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누구나 문화와 구조 속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삽니다. 그런데 개종했다고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부정하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측면이 있습니다. 물론 단호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시간이 필요한 부분, 탄력적인 부분도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엘리사는 바로 이 점을 인정하고 나아만의 개인 결단에 맡긴 것입니다. 그러니 당장 그런 문제로 갈등하거나 고민하지 말고 마음 편히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신앙생활하며 결단하고 정리해야 할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정답을 준 것 같습니다. 나아만이 매우 현실적인 문제를 제시했는데, 엘리사가 정답을 제시한 것 같습니다. 처지와 환경, 관계, 문화가 다 다른데 무턱대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겠습니까? 그런 것들은 주님과 나 사이의 개인적 결단의 차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