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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9w 열왕기상 47

왕상 21:1-16


(왕상 21:1-16, 개정) [1]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의 왕 아합의 왕궁에서 가깝더니 [2]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포도원이 내 왕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채소 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3]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 [4]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산을 왕께 줄 수 없다 하므로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아니하니 [5]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나아와 이르되 왕의 마음에 무엇을 근심하여 식사를 아니하나이까 [6] 왕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네 포도원을 내게 주되 돈으로 바꾸거나 만일 네가 좋아하면 내가 그 대신에 포도원을 네게 주리라 한즉 그가 대답하기를 내가 내 포도원을 네게 주지 아니하겠노라 하기 때문이로다 [7]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이르되 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 하고 [8]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들을 쓰고 그 인을 치고 봉하여 그의 성읍에서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족들에게 보내니 [9] 그 편지 사연에 이르기를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에 높이 앉힌 후에 [10] 불량자 두 사람을 그의 앞에 마주 앉히고 그에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 하고 곧 그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라 하였더라 [11] 그의 성읍 사람 곧 그의 성읍에 사는 장로와 귀족들이 이세벨의 지시 곧 그가 자기들에게 보낸 편지에 쓴 대로 하여 [12]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히매 [13] 때에 불량자 두 사람이 들어와 그의 앞에 앉고 백성 앞에서 나봇에게 대하여 증언을 하여 이르기를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매 무리가 그를 성읍 밖으로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고 [14] 이세벨에게 통보하기를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나이다 하니 [15] 이세벨이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 함을 듣고 이세벨이 아합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돈으로 바꾸어 주기를 싫어하던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소서 나봇이 살아 있지 아니하고 죽었나이다 [16] 아합은 나봇이 죽었다 함을 듣고 곧 일어나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더라



절대 열세에 있었던 북이스라엘 군대가 당시로서는 강국이던 아람의 벤하닷 군대를 두 차례나 물리치고 완승을 거두었습니다. 전력상으로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이 북이스라엘을 위해 아람 군대를 치셨기에 그런 기적 같이 승전했습니다. 하지만 아합은 여전히 인간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벤하닷을 그냥 돌려보낸 것입니다. 벤하닷이 빌며 빼앗은 성읍을 돌려주고 기념 거리를 조성하겠다고 하자 아합은 그와 조약까지 맺고 그를 아람으로 돌려보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벤하닷을 이스라엘 군대에 붙이셨을 때는 선민을 조롱하는 그들을 다 진멸하라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아합은 자기 힘으로 그들을 제압한 것 마냥 제 맘대로 벤하닷을 살려 보냅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 이렇게 말씀합니다. 20장 42절입니다. “그가 왕께 아뢰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나님은 심판을 경고하십니다. 43절입니다. “이스라엘 왕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의 왕궁으로 돌아가려고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그런 이후에 21장이 시작됩니다. 21장은 더는 전쟁 이야기가 아니라 나봇의 포도원 이야기입니다. 아합의 사마리아 왕궁 가까이에 나봇이라는 사람의 포도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합이 그 나봇의 포도원을 탐한 것입니다. 본문 2절입니다.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포도원이 내 왕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채소 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아합이 채소 밭을 원합니다. 채소는 원어로 <야다크>이고 밭은 <간>입니다. 야다크는 채소라는 말도 있지만 녹색의 식물, 나무들이란 뜻입니다. 간도 뜰, 정원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은 채소 밭을 푸른 정원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합이 푸른 정원을 더 확장하려고 나봇의 포도밭을 팔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도 아합이 처음부터 강제 수용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봇은 그 밭이 유산이기에 왕에게 팔 수 없다고 합니다. 사실상 나봇이 거절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원칙상 땅을 사고 팔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땅은 가나안에 처음 들어왔을 때 하나님이 배분해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그걸 사거나 팔면 처음에 하나님이 분배하신 땅의 균형이 깨져 각 지파간의 갈등이 야기될 수 있었기에 원칙적으로 땅을 사고 팔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땅은 각 지파의 소유이지 개인 소유는 아닙니다. 게다가 희년 때는 땅을 각 지파에 돌려주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소위 이스라엘의 토지 공개념 제도입니다. 토지는 개인 소유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땅은 하나님이 각 지파에게 나눠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봇의 거절 사유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왕이 제안하고 원한다 하여도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치 않다는 것입니다. 


4절 이하입니다. “[4]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산을 왕께 줄 수 없다 하므로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아니하니 [5]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나아와 이르되 왕의 마음에 무엇을 근심하여 식사를 아니하나이까” 두 차례나 아람과의 전쟁에서 승리했고, 전에 빼앗겼던 성읍도 되찾았고, 여론조사 결과 아합의 국정 지지도도 높아서 잔뜩 고무된 차에 왕궁 뜰을 더 넓혀 왕권을 극대화하겠다는 야심을 실현하려고 했는데 뜻밖에도 나봇이 포도원 양도를 거부한 것입니다. 아합이 답답해서 식사도 하지 않고 누웠다고 합니다. 그만큼 언짢았다는 것입니다. 아합은 원래 어른스러운 데가 없었습니다. 마치 투정하는 아이처럼 원하는 것을 못 얻자 자리에 누운 겁니다. 


이에 반해 이세벨은 매우 강합니다. 5절 이하입니다. “[5]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나아와 이르되 왕의 마음에 무엇을 근심하여 식사를 아니하나이까 [6] 왕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네 포도원을 내게 주되 돈으로 바꾸거나 만일 네가 좋아하면 내가 그 대신에 포도원을 네게 주리라 한즉 그가 대답하기를 내가 내 포도원을 네게 주지 아니하겠노라 하기 때문이로다 [7]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이르되 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 하고” 이세벨은 아합보다 훨씬 적극적입니다. 그래서 아합이 늘 이세벨에게 끌려다녔습니다. 아합의 고민을 들은 이세벨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이 말은 지금 당신이 왕이 맞냐는 것입니다. 왕권을 행사하면 될 터인데 한심하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자기가 해결할 터이니 밥이나 먹으라고 합니다. 


이세벨이 즉각 아합의 이름으로 장로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불량배 두 사람을 매수하여 나봇에 대해 거짓 증언하게 합니다. 이것이 음모인 줄 알면서도 편지를 받은 장로들이 협조합니다. 마침내 나봇을 처형하는 데까지 이릅니다. 의인이 졸지에 억울한 즉결 심판을 당한 것입니다. 한 나라의 최고 권력과 백성의 장로들이 공모하여 음모로 한 사람의 목숨과 포도원까지 빼앗습니다. 16절입니다. “아합은 나봇이 죽었다 함을 듣고 곧 일어나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더라” 


일반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내 심판을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역사를 공평하게 관리하십니다. 때로는 역사가 비틀거리고 기복이 심한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그 모든 것이 밝혀집니다. 언젠가는 역사가 제대로 평가됩니다. 역사의 주인은 끊임없이 진실을 왜곡하려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역사를 평정하십니다. 우리는 역사 현실에 대해 너무 속 끓일 필요는 없습니다. 언젠가 하나님이 다 바로잡으십니다. 다만 하나님의 심판의 맷돌은 너무 커서 그 돌아가는 것이 안 보이며 돌지 않고 있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 결산하고 계십니다. 아합 왕 시절 일반 백성들은 전혀 몰랐지만 하나님은 다 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심판을 경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