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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2w 열왕기상 46

왕상 20:31-43


(왕상 20:31-43, 개정) [31]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말하되 우리가 들은즉 이스라엘 집의 왕들은 인자한 왕이라 하니 만일 우리가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이스라엘의 왕에게로 나아가면 그가 혹시 왕의 생명을 살리리이다 하고 [32] 그들이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이스라엘의 왕에게 이르러 이르되 왕의 종 벤하닷이 청하기를 내 생명을 살려 주옵소서 하더이다 아합이 이르되 그가 아직도 살아 있느냐 그는 내 형제이니라 [33] 그 사람들이 좋은 징조로 여기고 그 말을 얼른 받아 대답하여 이르되 벤하닷은 왕의 형제니이다 왕이 이르되 너희는 가서 그를 인도하여 오라 벤하닷이 이에 왕에게 나아오니 왕이 그를 병거에 올린지라 [34] 벤하닷이 왕께 아뢰되 내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버지에게서 빼앗은 모든 성읍을 내가 돌려보내리이다 또 내 아버지께서 사마리아에서 만든 것 같이 당신도 다메섹에서 당신을 위하여 거리를 만드소서 아합이 이르되 내가 이 조약으로 인해 당신을 놓으리라 하고 이에 더불어 조약을 맺고 그를 놓았더라 [35] 선지자의 무리 중 한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그의 친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였더니 그 사람이 치기를 싫어하는지라 [36]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나를 떠나갈 때에 사자가 너를 죽이리라 그 사람이 그의 곁을 떠나가더니 사자가 그를 만나 죽였더라 [37] 그가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매 그 사람이 그를 치되 상하도록 친지라 [38] 선지자가 가서 수건으로 자기의 눈을 가리어 변장하고 길 가에서 왕을 기다리다가 [39] 왕이 지나갈 때에 그가 소리 질러 왕을 불러 이르되 종이 전장 가운데에 나갔더니 한 사람이 돌이켜 어떤 사람을 끌고 내게로 와서 말하기를 이 사람을 지키라 만일 그를 잃어 버리면 네 생명으로 그의 생명을 대신하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은 한 달란트를 내어야 하리라 하였거늘 [40] 종이 이리 저리 일을 볼 동안에 그가 없어졌나이다 이스라엘 왕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스스로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 [41] 그가 급히 자기의 눈을 가린 수건을 벗으니 이스라엘 왕이 그는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인 줄을 알아본지라 [42] 그가 왕께 아뢰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이다 [43] 이스라엘 왕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의 왕궁으로 돌아가려고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아람 왕 벤하닷의 2차 침공도 실패로 끝났습니다. 1차 공격 실패 후 더욱 치밀하게 준비하고 보완하여 더욱 크고 강한 군대로 침공했지만 오히려 1차 때보다 2차 때 완벽하게 참패했습니다. 하룻만에 군사 10만 명이 죽고, 나머지 군대는 아벡으로 피신했는데 갑자기 성벽이 무너지며 그들까지도 깔려죽고 말았습니다. 벤하닷은 겨우 목숨을 구걸해 아벡 성읍의 한 집에 들어가 깊은 골방에 몸을 숨깁니다. 숫적으로는 감히 비교할 수 없던 싸움이었습니다. 그만큼 북이스라엘이 열세였습니다. 어떻게 이스라엘 군대가 13만 대군의 아람 군대를 단숨에 섬멸할 수 있었을까요?


그 전쟁은 하나님이 하신 싸움이어서 그렇습니다. 28절을 보면 하나님이 이미 선지자를 보내 아람 군대를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셨습니다. 이미 싸우기 전에 이스라엘의 완성을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 약속하셨습니다. 마침내 말씀하신 그대로 북이스라엘 군대에 완벽한 승리를 안겨주셨습니다. 사람들끼리 싸울 때나 전력이 중요합니다만,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그때는 이미 전력의 차이나 지휘관의 전략 등은 의미가 없습니다. 만 명도 채 안 되는데 북이스라엘 군이 13만의 아람 군대를 하루 만에 섬멸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람 군대를 치셨기에 가능했습니다. 우리의 적들은 다 우리보다 강합니다. 우리가 이기려면 필히 주님이 우리 싸움에 개입하셔야 합니다. 북이스라엘 군대가 아람 군대를 물리친 것처럼 말입니다. 


아람의 군사들은 거의 다 죽고 벤하닷과 그의 신하 일부만 살아남아 아벡성 어느 집 깊은 골방에 숨습니다. 31절입니다.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말하되 우리가 들은즉 이스라엘 집의 왕들은 인자한 왕이라 하니 만일 우리가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이스라엘의 왕에게로 나아가면 그가 혹시 왕의 생명을 살리리이다 하고” 패장은 반드시 죽습니다. 벤하닷도 시간 문제이지 그 골방에서 끌려나가 죽을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신하가 뜻밖의 말을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들은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의 왕보다 인자하다고 소문이 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악하기로 유명한 아합보다 다른 나라 왕이 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천하의 벤하닷이 그 권면을 수용합니다. 32절입니다. “그들이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이스라엘의 왕에게 이르러 이르되 왕의 종 벤하닷이 청하기를 내 생명을 살려 주옵소서 하더이다 아합이 이르되 그가 아직도 살아 있느냐 그는 내 형제이니라” 아합은 벤하닷에게 파격적으로 선처를 베풉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북이스라엘의 사마리아를 포위한 채 아합을 협박하던 벤하닷입니다. 그렇게 기고만장한 벤하닷이 두 차례 전쟁에서 완패하고 이제는 목숨을 구걸하고 있습니다. 벤하닷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며 이렇게 말합니다. 34절입니다. “벤하닷이 왕께 아뢰되 내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버지에게서 빼앗은 모든 성읍을 내가 돌려보내리이다 또 내 아버지께서 사마리아에서 만든 것 같이 당신도 다메섹에서 당신을 위하여 거리를 만드소서 아합이 이르되 내가 이 조약으로 인해 당신을 놓으리라 하고 이에 더불어 조약을 맺고 그를 놓았더라”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람 군대와 선민 이스라엘을 침공해 조롱하고 능멸한 벤하닷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셨다는 것은 그들을 모두 진멸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아합은 제멋대로 벤하닷을 살려 보내고 아람과 조약까지 맺습니다. 벤하닷이 자기 앞에 엎드려 목숨을 구하고, 이전에 벤하닷의 아버지가 뺏은 이스라엘의 성읍을 다 돌려주고, 아람의 수도에 아합의 이름을 기념하는 거리를 만들겠다고 하니 아합이 거기에 동의합니다. 마치 아합 자신이 잘 싸우고 지휘해서 이스라엘 군대가 승리한 냥 제멋대로 벤하닷을 아람으로 무사히 돌려보내며 조약까지 맺은 겁니다. 


그런 아합에 대해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38절 이하입니다. “[38] 선지자가 가서 수건으로 자기의 눈을 가리어 변장하고 길 가에서 왕을 기다리다가 [39] 왕이 지나갈 때에 그가 소리 질러 왕을 불러 이르되 종이 전장 가운데에 나갔더니 한 사람이 돌이켜 어떤 사람을 끌고 내게로 와서 말하기를 이 사람을 지키라 만일 그를 잃어 버리면 네 생명으로 그의 생명을 대신하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은 한 달란트를 내어야 하리라 하였거늘 [40] 종이 이리 저리 일을 볼 동안에 그가 없어졌나이다 이스라엘 왕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스스로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 선지자는 아합 왕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전달합니다. 42절입니다. “그가 왕께 아뢰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무참히 짓밟으면 이렇게 진노하십니다. 아람의 벤하닷은 이스라엘의 침략자일 뿐만 아니라 교만하던 하나님 모독자요 대적자였습니다. 그럼에도 경솔하게 아합이 그를 내 형제라고 하며 살려 보내고 동맹까지 맺으며 온갖 선심을 다 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적인 처사일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합에게 엄중한 심판을 경고하십니다. 




우리는 무조건 하나님의 뜻과 분부대로 처신해야 합니다. 인간적인 생각이나 계산,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미련한 짓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결국은 그 책임을 물으십니다.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나님의 이 준엄한 말씀을 기억하고 사사로운 인간적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충실하여 저주나 심판이 아니라 복과 은혜를 누리며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