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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4w 열왕기상 43

왕상 19:15-21


(왕상 19:15-21, 개정)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17]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19]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그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릿소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20] 그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나를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21] 엘리사가 그를 떠나 돌아가서 한 겨릿소를 가져다가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 들었더라



엘리야가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놀라운 영적 체험을 합니다. 하나님이 아합왕과 그의 아내 이세벨에게 쫓겨 광야로 도피한 엘리야, 기진해서 쓰러져 생명을 거둬달라는 그에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먹을 것을 주고 기운을 차리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를 호렙산으로 이끌어 신비한 체험을 하게 하십니다. 


처음에는 엄청난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러나 그 강력한 바람 가운데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무시무시한 지진과 가공할 불이 닥치지만 거기에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드러내는 적절한 상징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것들을 통해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세미한 소리로 말씀하십니다. 세미한 소리는 작은 소리였다기보다는 영적 소리입니다. 그것은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내적 감화입니다. 엘리야의 심령에 말씀하시는 성령의 감동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엄청난 소리나 대단한 사건을 통해 말씀하실 줄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작은 소리로 말씀하십니다.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사람만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누가 죄를 지었으면 하나님이 그 자리에서 당장 벼락을 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 안 믿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기대와는 달리 언제나 세미한 음성으로 우리의 영혼에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영성이 투명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영적 감각이 예민해야 하고, 늘 깨어 있어야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놓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세미하기에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1장을 보면 옥에 갇힌 세례 요한이 자기 제자를 주님께 보냅니다. “당신이 오실 그분 맞습니까?” 세례 요한이 처음 주님을 뵙고는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제자를 주님께 보내 다시 확인합니다. 세례 요한도 혼란스러웠다는 겁니다. 달리 표현하면 당시 주님의 존재가 세례 요한의 기대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겁니다. 세례 요한도 엄청난 바람 소리를 기대했는데 실제 주님의 소리는 들릴까 말까 하는 미세한 소리였기 때문입니다. 이래서 많은 사람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실망하고 실족합니다. 주님은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 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존재 자체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랐기 때문에 의외로 사람들이 주님 때문에 실족합니다. 여러분, 큰 사건, 큰 소리, 크고 유명한 교회가 아니라 지극히 사소한 사건, 미미한 소리, 유명하지 않은 이웃들을 통해 주님은 우리에게 부단히 말씀하십니다. 큰 것이나 대단한 것만 기대하면 누구도 주님의 계시를 접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음성과 계시는 미세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평범한 일상을 통해 늘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합니다. 어쩌면 크고 화려하고 거창한 것은 다 가짜일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왜 여기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엘리야가 하나님께 답합니다. 14절입니다.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체험하고도 엘리야는 여전히 두려움과 부정적 정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이런 엘리야의 하소연을 들으시고도 그를 숨겨주겠다거나 확실한 피난처로 인도하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탄원을 듣고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15절 이하입니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하나님은 세상이 무서워 도망친 엘리야에게 다시 돌아가라고 하시며 사명을 주십니다. “ 네 길을 돌이키라”는 것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무섭다고 피하거나 달아나지 말고 돌이켜 세상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돌아가서 선지자의 소임을 다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을 피하거나, 받은 사명을 유보하는 것에 동의하시지 않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께 대한 열심히 유별한데 지금은 아닌 것 같으니 자제하고 숨어 지내야겠다고 합니다(14절). 그럼에도 하나님은 되돌아가서 선지자의 소임을 다하라고 하십니다. 


18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하나님은 자기 혼자만 남았다고 생각하는 엘리야에게 이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이 자기 혼자이고, 아합왕이 자기 목숨마저도 노리고 있다고 엘리야는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너 같은 사람이 7,000명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 너는 되돌아가서 선지자의 사명을 다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북한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하 어디엔가 하나님이 7,000명을 남겨두셨습니다.


엘리야는 호렙에서 떠나 이스라엘로 돌아가며 하나님이 분부하신 말씀을 수행합니다. 특히 엘리사를 자기 후계자로 삼는 대목을 보십시오. 19절입니다.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그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릿소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겉옷을 던지는 것은 자기 직무를 위임할 때 행하는 의식입니다. 엘리사가 즉각 알아차리고 엘리야에게 부모에게 인사하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엘리사는 집으로 가서 소 한 겨리, 곧 한 쌍을 잡습니다. 그 소를 부리던 기구들을 다 불사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그의 전적인 순종과 헌신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엘리사도 대단한 사람입니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겉옷을 던지자 그는 하나님의 소명이 임했다고 알아차린 겁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소들을 부리던 기구들을 불태우며 하나님의 소명에 응답합니다. 그는 고기를 동네 모든 사람에게 나눠주며 잔치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는 엘리야를 따라 나섭니다. 엘리사도 이스라엘 역사에서 엘리야 못지않은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이렇게 하여 엘리야는 자기의 직무를 엘리사에게 대물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