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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7w 

막 14:1-9

향유를 부은 여인


(막 14:1-9, 개정) [1]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2] 이르되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3]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4]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8]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이것은 실제 고난주간 수요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주님은 수요일에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낮에는 예루살렘에 갔다가 잠은 성 밖 베다니에서 주무셨지만, 수요일만큼은 베다니에서 쉬셨습니다. 나병환자였던 시몬이 주님을 초대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귀하고 값비싼 나드 향유를 주님 머리에 붓는 일이 일어납니다. 1절 이하를 보면 예루살렘에서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주님을 잡으려고 흉계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주님도 큰 감동을 받고 여인이 향유를 부은 사건을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삼겠다고 하십니다. 9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그래서 오늘 우리도 그 여인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드 향유는 매우 값진 것이었습니다(3절). 제자들이 비난할 정도로 고급 향유였습니다(5절). 당시 여인이 준비한 향유 값이 300데나리온입니다. 성인 남성이 1년간 일해야 모을 수 있는 값이었습니다. 그러니 제자들과 주위 사람들이 얼마나 놀라고 황당했겠습니까? 주님께는 값진 향유를 바쳐야 합니다. 내게 있는 가장 소중하고 값진 것을 헌상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천상의 예배 장면이 나옵니다. 24장로들이 자기들의 면류관을 벗어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던집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상급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걸 다 벗어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놓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자기들의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헌상했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도 자기의 심장보다 소중한 아들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나의 가장 값진 재능, 시간, 재물을 주께 바치는 것이 진정한 헌상입니다. 베다니의 이 여인도 그렇게 주님께 가장 소중하고 값 비싼 향유를 아낌없이 부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감격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책망했지만 주님은 칭찬하셨습니다. 


그 여인이 바친 나드 향유는 순전한 것이었습니다. 순전한은 순수한이란 뜻입니다. 원액이라는 말입니다. 주님께 바치는 것은 깨끗해야 합니다. 구약 때는 성막에서 향유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이 때 가장 중요한 조건은 순수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흠과 티가 없어야 합니다. 레위기 22장에 보면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모두 흠이 없어야 한다고 합니다. 


베다니의 여인이 헌상한 나드 향유는 옥합을 깨뜨려 드린 향유입니다. 3절 하반절입니다.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이것은 아낌없이 온전하게 희생적으로 드렸다는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어느 이름 없는 소년이 자기 가진 것을 다 드렸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르밧 과부도 마지막 한 움큼의 가루와 기름을 바쳤을 때 놀라운 기적이 발생했습니다. 성경이 온전한 십일조를 강조하고, 여호와의 성일도 온전히 지키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그렇게 해야 주님께 헌상되는 향기로운 향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옥합에 담긴 향유 중에 얼마 정도는 바칠 수 있어도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부어드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것이 늘 우리의 한계입니다. 가룟 유다가 흥분했습니다. 그 여인을 책망했다고도 합니다. 주님이 여인을 두둔합니다. 그 여인이 좋은 일을 했다는 겁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좋은 일은 이런 뜻입니다. 8절입니다.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은 시신에 향유를 발랐습니다. 그래서 장례 때는 반드시 향유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놀라운 예지력으로 실제 주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향유를 부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여인의 행위를 당신 장례를 준비했다고 보십니다. 제자들도 사람들도 향유를 허비한다고 할 때 주님만 그 여인의 행위를 두둔합니다. 주님은 오고 오는 세대가 너의 행위를 기억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도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기쁨과 보람이 되는 헌신과 헌상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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