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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3w 열왕기상 38

왕상 17:17-24


(왕상 17:17-24, 개정) [17] 이 일 후에 그 집 주인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18]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19] 엘리야가 그에게 그의 아들을 달라 하여 그를 그 여인의 품에서 받아 안고 자기가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 [20]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이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21]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22]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23]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의 어머니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아났느니라 [24]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지난 시간에 이어 오늘도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이나 이방이나 과부나 고아라고 하면 그 사회의 대표적 약자였습니다. 하나님도 고아나 과부를 등치거나 해치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과부는 자신을 지키고 방어할 힘도 없지만, 경제적으로도 그 사회의 가장 어려운 계층이었습니다. 본문의 사르밧 과부도 이제 더는 버틸 수 없어 마지막 한 줌 가루로 떡을 해먹고 죽으려고 땔감을 구하려고 집을 나섰다가 엘리야 선지자를 만납니다. 


엘리야는 그 과부에게 내게 먼저 떡을 만들어 가져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엘리야는 네가 만일 그대로 시행하면 비가 다시 오기까지 통에 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기름이 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같았으면 엘리야 선지자의 이런 말에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나그네인 엘리야의 말을 믿을 수 있었을까요? 구걸할 데가 없어 과부에게 손을 내미느냐 그것도 마지막 남은 떡 한 조각까지 가져오라고 하느냐고 했을 것입니다. 마지막 남은 떡 한 조각 먹고 죽겠다는데도 그걸 자기에게 달라고 하니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상황입니까?


그러나 사르밧 과부가 대단한 것은 엘리야의 말을 믿고 그대로 했다는 겁니다. 14절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5절입니다.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 그렇게 했더니 통에 가루와 기름이 동 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모험이고 결단입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 말씀과 약속에 대한 모험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좀처럼 결단을 하지 못합니다. 사르밧 과부는 모험을 결행합니다. 낯선 이방인 나그네가 사기꾼이라면 과부는 아들과 최후의 만찬도 하지 못하고 더 빨리 죽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엘리야의 말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대로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옛날 사르밧의 과부는 그런 놀라운 기적을 체험했는데 오늘날 우리는 그런 신비를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사르밧의 과부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모험을 했고,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모험을 감행했다가 나만 손해 보고,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 때문에 사실상 우리는 작은 것 하나 결단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통에 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에 기름이 마르지 않는 기적을 체험하기 어렵습니다. 주님도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 명이 넘는 군중을 먹이신 적이 있습니다. 주님도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모험하셨습니다. 실제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그런 망신이 어디 있을까요? 


본문을 보면 말씀에 순종하고 모험을 했던 사르밧 과부에 대한 복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아들이 병이 들었는데 급사하고 말았습니다. 원망의 화살이 누구에게 향합니까? 18절입니다.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과부는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을 체험하고 하루하루 지내면서도 다른 일이 터지니까 엘리야를 원망하고 그 모든 화의 원인을 엘리야에게 돌립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을 믿는데도 불행이 우리에게 닥칩니다. 그래서 늘 우리는 불만이고 주님께 원망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데도 왜 끔찍한 일이 우리 삶에 발생할까요? 


일순간 우리의 모든 것이 무너지는 절망감과 허무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아픔과 고통은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의 불행, 졸지에 아들을 잃은 그녀의 아픔도 결국 그 여인의 복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24절입니다.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이방인이었던 그 여인, 그동안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던 그녀로 하여금 더욱 분명히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권능을 체험하고 깨달아 더 깊이 하나님을 믿게 하려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24절이야말로 그 아픔을 통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한 사르밧 여인의 진솔한 신앙고백입니다.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아도 반신반의했던 그녀가 죽은 자기 아들이 살아나자 엘리야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믿는 자의 시련은 다 이와 같습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시고, 복을 주시기 위한 것들입니다. 


엘리야는 구약에 등장하는 그 어떤 선지자보다 위대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해서 3년 6개월 동안 오지 않던 비도 내리게 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도 기도해서 하늘에서 불을 내렸습니다. 본문에서는 기도해서 사르밧 과부의 죽은 아들을 다시 살리기도 했습니다. 야고보서 5장 17절 이하는 엘리야의 기도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우리와 성정이 같았던 엘리야가 기도로써 숱한 기적을 일으키며 하나님의 권능을 드러낸 많은 사건들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은혜가 되고 기도생활에 놀라운 도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