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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8w 열왕기상 2

왕상 1:5-10


(왕상 1:5-10, 개정) [5] 그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하니 [6] 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7]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그들이 따르고 도우나 [8]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의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9] 아도니야가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바위 곁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왕자 곧 자기의 모든 동생과 왕의 신하 된 유다 모든 사람을 다 청하였으나 [10]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과 자기 동생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더라



5절은 ‘그 때에’로 시작합니다. 그 때는 다윗이 나이가 몸이 차가워져 많아 피가 뜨거운 젊은 처녀 한 명을 구해 왕이 품고 주무시도록 했습니다. 다윗은 시중은 받았으나 잠자리는 함께 하지 않았다던 그 시절을 가리킵니다. 다윗이 극도로 기력이 쇠해 나라를 다스릴 수 없었고 사실상 죽음을 앞에 두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권력 다툼이 발생합니다. 다윗은 그 때까지 공식적으로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았습니다. 비공식적으로는 당연히 솔로몬이 후계자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윗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것을 공식화하지는 못했습니다. 아직 솔로몬의 나이가 어리고, 그 위로 형들이 많았기에 자칫하면 자식 간 권력 다툼이나 나라가 혼란에 빠질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아버지가 서열을 무시하고 아직 나이 어린 솔로몬을 후계자로 삼을 것을 눈치 챈 네 번째 아들 아도니야가 자신이 왕이 되겠다고 한 것입니다. 아도니야의 용모가 준수했다고 합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한 번도 꾸중을 들어본 적도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를 신임하고 지지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어린 솔로몬보다는 아도니야가 왕위를 승계해야 옳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도니야편에 가담한 사람 가운데 결정적인 인물은 요압입니다. 그는 다윗 왕의 오른팔이었습니다. 다윗 군대의 총사령관이었습니다. 요압이야말로 다윗의 의중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에 아도니야의 편에 선 것입니다. 마치 주님의 제자 가룟 유다가 마지막에 주님을 배신한 것처럼 요압도 다윗을 배신한 것입니다. 한 사람 더 있습니다. 제사장 아비아달입니다. 그는 사독 제사장과 함께 백성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던 사람입니다. 그러니 아도니야로서는 이 두 사람을 얻은 것이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았습니다. 


다윗은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아직 공식적으로 후계자는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솔로몬을 차기 왕으로 생각했지만 그것을 아직 공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열로 따지면, 맏아들 압몬은 이미 압살롬 손에 죽었습니다. 동생 압살롬에게 살해된 겁니다. 셋째 아들이던 압살롬은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요압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그 다음이 아도니야입니다. 아도니야는 외모가 준수해 왕의 기품이 느껴졌을 뿐 아니라 성실하기까지 했습니다. 게다가 제사장 아비아달과 군사령관 요압 장군까지 가담했으니 무엇을 봐도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아도니야의 문제와 한계는 무엇이었을까요? 5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하니” 아도니야가 스스로 자기를 높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결정적인 문제입니다. 당시 왕정 시대라 하더라도 하나님이 왕을 선택해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러므로 왕정이라기보다는 여전히 신정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되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자기가 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이 정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아도니야는 완전히 실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7절도 보십시오.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그들이 따르고 도우나” 아도니야가 반역을 꾀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역모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자 하는 자는 자기를 지지하는 사람을 모아서 은밀히 모의할 게 아니라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도니야는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신의 반역에 가담한 역도들과 모의한 것입니다. 


아도니야는 자신의 세를 공고히 하려고 단합대회까지 합니다. 그는 잔치를 벌여 살진 송아지를 잡고 그의 동생들도 부르며 사람들을 회집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 자리에 솔로몬과 나단 선지자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은 당연히 경쟁 상대이고, 나단은 솔로몬을 지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물론 아버지 다윗에게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반역 모임을 알릴 수 있겠습니까? 이 모든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에 대한 반역과 모독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지적입니다. 


누구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누구도 하나님을 상대로 한 모의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결국 그들 모두는 다 죽습니다. 불리한 것 같은 어린 솔로몬이 아버지의 왕위를 계승합니다. 사람들 눈에는 솔로몬보다 아도니야가 훨씬 더 왕이 될 것 같았지만 그 반대로 됩니다. 솔로몬이 가장 영화롭고 훌륭한 왕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