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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7w 사무엘하 강해 28

삼하 21:1-14


(삼하 21:1-14, 개정) [1] 다윗의 시대에 해를 거듭하여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 [2] 기브온 사람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요 그들은 아모리 사람 중에서 남은 자라 이스라엘 족속들이 전에 그들에게 맹세하였거늘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으므로 그들을 죽이고자 하였더라 이에 왕이 기브온 사람을 불러 그들에게 물으니라 [3] 다윗이 그들에게 묻되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내가 어떻게 속죄하여야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을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 하니 [4] 기브온 사람이 그에게 대답하되 사울과 그의 집과 우리 사이의 문제는 은금에 있지 아니하오며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는 문제도 우리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하니라 왕이 이르되 너희가 말하는 대로 시행하리라 [5] 그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를 학살하였고 또 우리를 멸하여 이스라엘 영토 내에 머물지 못하게 하려고 모해한 사람의 [6] 자손 일곱 사람을 우리에게 내주소서 여호와께서 택하신 사울의 고을 기브아에서 우리가 그들을 여호와 앞에서 목 매어 달겠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내가 내주리라 하니라 [7] 그러나 다윗과 사울의 아들 요나단 사이에 서로 여호와를 두고 맹세한 것이 있으므로 왕이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아끼고 [8] 왕이 이에 아야의 딸 리스바에게서 난 자 곧 사울의 두 아들 알모니와 므비보셋과 사울의 딸 메랍에게서 난 자 곧 므홀랏 사람 바르실래의 아들 아드리엘의 다섯 아들을 붙잡아 [9] 그들을 기브온 사람의 손에 넘기니 기브온 사람이 그들을 산 위에서 여호와 앞에 목 매어 달매 그들 일곱 사람이 동시에 죽으니 죽은 때는 곡식 베는 첫날 곧 보리를 베기 시작하는 때더라 [10] 아야의 딸 리스바가 굵은 베를 가져다가 자기를 위하여 바위 위에 펴고 곡식 베기 시작할 때부터 하늘에서 비가 시체에 쏟아지기까지 그 시체에 낮에는 공중의 새가 앉지 못하게 하고 밤에는 들짐승이 범하지 못하게 한지라 [11] 이에 아야의 딸 사울의 첩 리스바가 행한 일이 다윗에게 알려지매 [12] 다윗이 가서 사울의 뼈와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를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서 가져가니 이는 전에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을 길보아에서 죽여 블레셋 사람들이 벧산 거리에 매단 것을 그들이 가만히 가져온 것이라 [13] 다윗이 그 곳에서 사울의 뼈와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를 가지고 올라오매 사람들이 그 달려 죽은 자들의 뼈를 거두어다가 [14]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와 함께 베냐민 땅 셀라에서 그의 아버지 기스의 묘에 장사하되 모두 왕의 명령을 따라 행하니라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니라


본문은 다윗 왕 시절 3년간 기근이 이스라엘에 닥친 이야기입니다. 나라가 정치나 외교적으로 안정이 되었습니다만 기근이 닥친 것입니다. 1절입니다. “다윗의 시대에 해를 거듭하여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 기근으로 민심이 고약해지자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기근의 이유가 사울 왕이 기브온 사람들의 피를 흘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원래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 하나님은 가나안 원주민을 다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가나안 원주민 가운데 하나이니까 다 진멸되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그들을 죽였다고 하나님이 그걸 기억하고 계시다가 사울이 이미 죽은 지 오래 지났는데 다윗 시대에 와서 기근의 재앙을 내린 것입니다. 2절입니다. “기브온 사람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요 그들은 아모리 사람 중에서 남은 자라 이스라엘 족속들이 전에 그들에게 맹세하였거늘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으므로 그들을 죽이고자 하였더라 이에 왕이 기브온 사람을 불러 그들에게 물으니라” 이스라엘이 기브온 족속에게 무슨 맹세를 했다는 것입니까? 


원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약속도 하고 맹세도 합니다. 과거 이스라엘은 기브온 사람들과 맹세를 했다고 합니다. 여호수아 9장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진두지휘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입성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대로 가나안의 족속들을 진멸하기 시작합니다. 가나안 원주민들은 그런 이스라엘의 기세에 숨죽이고 있었습니다. 기브온 족속들은 처음부터 이스라엘을 상대해 싸울 생각이 없었습니다. 대신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남을 꾀를 생각해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려고 합니다. 당시 기브온 족속은 협상 대표단을 파견할 때 마치 자신들이 가나안 족속이 아닌 먼 지역에 살고 있는 떠돌이 족속으로 위장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이 가나안 족속이 아니라고 하니까 그 말을 믿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평화협정을 선언한 것입니다. 조약을 맺은 후 사흘 만에 기브온 족속은 떠돌이 족속이 아닌 가나안 원주민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이미 하나님의 이름으로 체결된 협정을 물릴 수 없었습니다. 여호수아 9장 18절입니다. “그러나 회중 족장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지 못한지라 그러므로 회중이 다 족장들을 원망하니”


그런데 사울 왕 시대 때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서약한 것을 깨고 기브온 족속을 학살했습니다. 사울이 백성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이 미워하는 기브온 사람들을 학살한 것입니다. 이것이 사울의 문제입니다. 사울은 백성들의 지지와 환심을 사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조약을 개념 없이 깼습니다. 여호수아를 보십시오. 그는 기브온에게 속아서 평화협정을 맺었지만 그 사실을 알고 나서도 처단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여호수아와 사울의 차이입니다. 


기브온 족속에 대한 사울의 대학살이 자행된 후 시간이 흘렀지만 하나님은 그 사건을 계속 지켜보신 것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서도 그 사건이 해결되지 않자 하나님은 그 사건을 결산하신 것입니다. 다윗이 아차 싶어서 당장 기브온 족속을 부릅니다. 3절입니다. “다윗이 그들에게 묻되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내가 어떻게 속죄하여야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을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 하니” 우리는 누구에게 잘못을 범했을 때 하나님께만 회개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뿐 아니라 피해 당사자에게도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주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형제와 먼저 화해하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께 회개하며 용서를 구했지만, 기브온 족속을 불러 그들에게도 용서를 구합니다. 기브온 족속은 다윗에게 이렇게 답합니다. 그들은 돈으로는 안 된다고 합니다. 그들은 자기 족속을 대량학살한 주범인 사울 왕의 자손 7명을 달라고 하고, 다윗은 그들에게 7명을 내줍니다. 이것은 단순한 앙갚음이 아닙니다. 이것이 성경의 기본원리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대속의 죽음 이후 시대를 삽니다만, 구약시대 때는 죄값을 지불하려면 반드시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의 오랜 죄인 사울의 기브온 족속 학살이라는 해묵은 죄가 청산됩니다. 본문 14절 하반절입니다.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니라” 다윗이 비를 달라는 기도가 해묵은 죄가 청산된 후에 하나님께 상달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서약된 평화협정은 지켜져야 합니다. 사람은 쉽게 잊고 지내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울 왕 시대 때의 일이고 다윗도 백성도 다 잊고 있는데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걸 문제 삼아 3년간의 기근으로 징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문제를 삼으시고 결국은 기브온 족속에게 죽음으로 속죄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억합시다. 우리는 언제나 사람에게도 하나님께도 우리 허물과 잘못에 대해 사죄를 빌어서 재앙이 아닌 은혜를 입으며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