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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5일 주일오후예배
본문: 롬 13:12-14
제목: 그리스도로 옷 입자!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백화점은 이미 가을 겨울옷으로 바뀌었습니다. 날은 아직 덥지만 추석이 2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절기상으로 이미 가을입니다. 환절기를 맞아서 옷에 관한 말씀을 상고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옷에 대한 관심이 지대합니다. 생활의 필수조건을 꼽을 때 의식주라고 합니다. 먹는 것보다 사는 집보다 옷이 먼저입니다. 해외여행을 해보면 우리나라처럼 옷 잘입는 나라는 없습니다. 패션의 나라라는 이태리나 프랑스도 우리에 비하면 안 됩니다. 특히 젊은이들의 옷을 우리와 비교해보면 남루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우리가 관심해야 할 옷은 그런 게 아니라고 합니다. 빛의 갑옷,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자고 합니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우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동일성, 정체성을 분명히 하며 살라는 뜻입니다. 옷은 그 사람의 신분입니다. 군복을 입으면 그 사람은 군인이고, 교복을 입으면 학생이고, 작업복은 노동자이고, 양복을 잘 갖춰 입으면 사무직이고, 흰 가운을 입고 있으면 의사이고, 법의를 입으면 법관입니다. 옷은 국적도 나타냅니다. 아오자이를 입으면 중국 사람이거나 베트남 사람이고, 한복을 입으면 한국 사람, 일본 사람은 기모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로 옷을 입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임을 대외적으로 분명히 하며 살라는 뜻입니다. 이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중동 사람임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남자는 터번을 쓰고, 여자는 브루카를 씁니다. 이렇게 알도록 하고 살라는 겁니다. 교회에서든 집에서든 직장에서든 어느 나라를 가든 그리스도로 옷 입고 누가 봐도 그리스도인으로 알도록 살라는 말입니다. 빛의 갑옷은 어디서나 입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에서만 입으려고 합니다. 성가대 가운처럼 교회에서만 입고, 벗어놓고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봤을 때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를 모릅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빛의 갑옷과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는 말씀을 우리는 심각하게 들어야 합니다. 천국 갈 때도 그리스도로 옷 입고 가야 합니다. 마태복음 22장 11절 이하입니다. “[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요한계시록 7장 13절 이하를 보면 요한이 천국을 관람하다가 천국 사람들이 흰옷을 입고 있는 게 신기해서 가이드를 하고 있는 장로에게 묻자, 그 장로가 대답하기를, 천국은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사람만 올 수 있다고 합니다. 빛의 갑옷, 그리스도로 옷 입지 않으면 천국 못 갑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 때도 빛의 갑옷을 입고 살아야 하고, 천국 갈 때도 입고 가야 합니다. 이 옷은 우리의 영원한 소속과 신분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사회생활하기에 불편하다고, 사업에 불리하다고 슬며시 옷을 벗어버리는 비겁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말라는 겁니다. 당당하게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며 살라는 겁니다. 본문을 보면 바울은 밤이 깊을수록 더욱 빛의 갑옷을 입고 그리스도로 옷 입자고 합니다. 이것은 막연한 말이 아닙니다. 당시 로마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의 박해 상황을 반영한 말입니다. 그때는 적당한 어두움에 파묻혀서 사는 게 좋은데, 자칫하면 순교할 상황인데, 바울은 어두울수록 위험할수록 더욱 그리스도로 옷 입자고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그리스도인의 고유한 신분, 동일성, 정체성을 잃지 마십시다. 그야말로 빛의 갑옷을 입으십시오. 그리스도로 옷 입고 당당히 생활하십시오.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는 말은 그리스도인의 품위를 지키며 살라는 뜻입니다. 옷은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옷 입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정서를 압니다. 세상에서 딱한 사람은 타잔입니다. 훗날 팬티만 입고 천국에 갈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이태리 여행 갔다가 반바지 입고 왔다고 제가 바티칸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옷 갈아입고 이튿날 다시 간 적이 있습니다. 직업이 뭐냐고 물어서 목사라고 하면 노골적으로 무시합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결국 신자들이, 목사가 빛의 갑옷을 입지 않고 항상 팬티만 입고 살아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대놓고 무시하고 경멸하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품위를 다 잃은 겁니다. 얼마나 천한 족속으로 보는지 모릅니다. 벌거벗은 임금님 얘기가 있습니다. 임금이면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기품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런데 임금이란 사람이 벌거벗고 대로를 행진합니다. 사람들이 다 웃고 손가락질 합니다. 요즘 우리는 벌거벗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게 우리 그리스도인의 자화상입니다. 본문을 보면 그리스도로 옷 입고 사는 자들의 품격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사는 삶입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그리스도인 고유의 품위가 회복됩니다. 그래서 더는 우리 삶을 통해 주님을 욕되게 하면 안 됩니다. 저 사람 예수 믿는 사람인데 삶에 격조가 있다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실추된 기독교의 체면을 회복시켜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빛의 갑옷을 입으라는 얘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의 보호자로 삼으라는 겁니다. 옷의 기능 중 하나는 우리 몸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인류 최초의 옷은 무화과나무 잎사귀로 엮은 것이었습니다. 이게 옷의 기원입니다. 그러나 이 옷은 금방 시들고 말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천이나 섬유로 만든 옷은 마치 나무잎사귀와 같습니다. 금방 시들고 말라버립니다. 하나님이 지어주신 가죽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사람이 만든 옷, 세상 옷은 그게 아무리 멋지고 화려해도 다 낡아버릴 옷입니다. 나를 지켜주지 못합니다. 재물도 권세도 명예도 지위도 모두가 무화과나무 잎사귀로 엮은 치마입니다. 부디 그리스도로 옷 입으십시다. 든든한 빛의 갑옷을 입으십시오. 이게 안전합니다. 이게 우리 영혼의 안녕을 보장받는 길입니다. 빛의 갑옷을 입고 가을도 겨울도 탈 없이 따뜻하게 보내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