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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12일 주일낮예배
본문: 눅 16:1-9
제목: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5] 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 [6]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졌느뇨 가로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8] 주인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본문은 주님의 비유 말씀입니다. 한 부자가 있었는데, 청지기가 맘에 들지 않습니다. 왜냐면 청지기가 자기 재산을 축내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주인은 청지기더러 ‘네가 보던 것을 셈하라’고 합니다. 그러자 청지기의 독백이 나옵니다. ‘빌어먹자니 부끄럽고 땅을 파자니 힘이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다가 청지기는 무릎을 칩니다. 묘안이 떠오른 겁니다.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다 불러 모읍니다. 그리고는 자기 마음대로 빚을 탕감해 주기 시작합니다.

본문이 말하는 기름은 올리브유인데, 말이라는 단위는 바트입니다. 올리브 나무 146그루에서 100바트의 기름을 얻는다고 합니다. 대단한 양입니다. 석은 코르라는 말인데, 1코르는 275킬로그램입니다. 그러니 100코르는 27500킬로그램입니다. 가마니로 따지면 80킬로짜리 343가마니입니다. 이것도 굉장한 양입니다. 그런데 곧 해고될 청지기가 그 많은 빚의 절반, 20-30프로를 일방적으로 탕감해 주고, 그 외에도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다 불러서 탕감해 주었다고 합니다.

청지기는 왜 그랬을까요? 주인에게 해고에 대한 보복입니까? 마지막으로 선심을 쓰고 있는 겁니까? 4절입니다: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실직 이후를 대비한 것입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수작을 부린 청지기에 대한 주인의 반응입니다. 8절입니다: “주인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마지막 9절은 더욱 난감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직역하면 불의한 돈으로 친구를 사라는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라는 말로 들립니다. 어떻게 보면 목적만 있으면 수단은 다 정당화 된다는 말로 들리기도 합니다.

주인이 칭찬한 대목을 생각해 봅니다. 여기서 주인이 청지기를 칭찬한 것은 다시 손해를 본 것을 칭찬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쫓겨날 자기의 장래를 생각해서 전격 모험을 감행한 청지기의 발상, 용기, 결단을 칭찬한 겁니다. 그 와중에도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고 준비한 청지기의 비상한 책임감을 높이 산 겁니다. 사실 바로 여기에 주님이 오늘 난해한 비유를 말씀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장래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없이 위기 없이 살아가는 제자들과 신자들을 깨우치기 위해 하신 말씀입니다. 8절 하반절입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이 세대의 아들은 불신자를 빛의 아들은 신자들을 가리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게 불의한 방법이든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필사적으로 악착같이 자기의 미래를 준비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이 훨씬 자기의 미래에 대해 책임적이라는 겁니다. 이에 비해 우리 신자들은 자신의 미래, 영원한 운명에 대해 너무도 무책임합니다. 아무런 준비도 채비도 없이 삽니다. 이 부분을 주님이 비판하신 겁니다.

천국가기 위해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이 정작 천국의 삶을 대비하는 일에는 너무 소홀하니다. 잘 아시는대로 천국을 가기 위해 자선하고, 채무자의 빚을 탕감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천국은 자선의 댓가가 아니라 은혜로 가는 겁니다. 천국가기 위해 자선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천국에 가서 누릴 영광이나 영화는 이 땅에서 우리가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의 내용이 장차 우리가 천국에서 누릴 영광을 결정합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아무런 대비가 없습니다. 물론 천국 못 가는 것보다 일단 가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게 전부는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1절을 보면 이렇게 얘기합니다: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천국에서 누릴 영광이 다 다르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 9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불의한 재물은 이 세상 모든 재물을 뜻합니다. 주님은 이 세상 재물 일체를 일단 불의하다고 보셨습니다. 여러분은 동의하십니까? 왜 그럴까요? 엄연히 내가 노력해서 정당하게 번 것인데 어떻게 불의하다는 겁니까? 물론 돈 그 자체가 더럽거나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세상에 깨끗한 돈이란 없습니다. 세상 자체가 구조악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회의 한 성원입니다. 나도 구조악이라는 이 사회에 일익을 담당하는 겁니다. 내가 아무리 도덕적이라 해도 이 세상 자체가 악으로 형성되어있기에 어쩔 수 없이 나도 공범입니다. 그러니까 돈의 순환과 유통 자체가 이미 깨끗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재물이 부정하다는 주님의 입장은 맞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불의한 재물’이라고 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부정한 재물을 가리킵니다. 돈은 투명하게 버는 것도 중요하짐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리, 집행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돈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모든 재화에 대한 절대적인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물질을 시한부로 맡아 관리하며 주인의 뜻에 따라 집행하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소유하고 계신 물질을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관리하고 집행해 오셨습니까? 이것이 철저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여러분의 물질은 다 부정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재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관리하고 집행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불의한 재물이라는 규정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아무리 투명하고 깨끗하게 벌었다 해도 하나님의 뜻과 방법대로 집행하고 관리하지 못했다면 여러분의 재물은 불의한 재물입니다. 우리는 다만 청지기일 따름입니다. 소유권은 주님께, 내겐 관리권만 있습니다. 그러나 청지기가 주인 행세를 하며 삽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물질은 다 불의한 재물이고, 우리는 불의한 청지기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은 그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그 누구도 불의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내리신 처방입니다. 그게 비록 불의한 재물일망정 본문의 청지기처럼 그것으로 친구를 사라는 겁니다. 채무자를 불러 빚도 탕감해 주고, 자선도 하라는 겁니다. 그리하면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처소로 영접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다 자신의 미래를 위한 값진 투자라는 겁니다. 따라서 오늘 이것 하나 만큼은 기억하십시다. 어리석은 청지기는 주인의 재물을 낭비하며, 지극히 현실적이고 타산적인 청지기는 주인의 재물을 셈하기 바쁘지만, 지혜로운 청지기는 주인의 재물로 친구를 산다는 겁니다. 이후에 주님이 천국에서 누릴 영광으로 보상해 주십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는 일에 무책임하거나 소홀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우리의 영원한 미래를 준비하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