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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8일 주일낮예배/대림절 첫째주일
본문: 사 61:1-3
제목: 기다림의 계절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어느새 대강절 첫째주일입니다. 대강절은 성탄절 전 4주간을 말합니다. 매주 촛불을 하나씩 밝혀가며 곧 성탄하실 주님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대강절은 한마디로 기다림의 계절입니다. 그렇다면 왜 기다려야 합니까? 왜 대강절입니까? 왜 대강절이 필요합니까? 주님은 올해도 반드시 기다리는 자에게 오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아무에게나 오시지 않습니다. 채비된 자에게 오십니다. 그래서 대강절입니다. 그래서 대강절이 여전히 유효합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환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현장에 주님이 오셨습니다. 누구를 찾아가셨습니까? 38년 된 환자를 찾아가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거기에는 그 환자만 있었던 게 아닌데 말입니다. 38년 된 환자가 가장 오래된 환자였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절망하고 체념하며 그냥 누워 있었으나, 38년 된 환자는 그토록 병이 오래되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다른 모든 환자를 지나쳐 그를 찾아가 은혜를 베푸신 겁니다. ‘자리를 들고 돌아가라.’ 여러분 누구도 우연히 주님을 뵐 사람, 실수로 주님을 만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반드시 기다려야 합니다. 올해도 우리가 꼭 대강절을 통해 주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할 필요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겁니다. 준비된 자에게 새로운 감격으로 성탄하시기 때문입니다.

성탄절은 2000년 전의 일회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성탄절은 2000년 전 주님의 성탄을 회고하는 절기가 아닙니다. 올해도 새롭게 성탄하실 주님을 실존적으로 체험하는 사건입니다. 주님은 올해도 반드시 오십니다. 기다리는 자에게 주님은 새롭게 성탄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주님이 어떻게 하신다고 합니까?

본문은 마음이 상한 자를 고쳐주신다고 합니다. 사람 사는 세상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오늘 제가 소개한 이사야서는 지금으로부터 2700년 전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도 이미 세상에는 마음에 상처와 아픔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는 겁니다. 그래서 메시아가 이 땅에 와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마음이 상한 자를 고쳐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이사야 1장 5절 이하를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그런데 이게 어찌 2000년 전 주님 시대, 또 2700년 전 이사야 시대 만 해당하겠습니까? 그대로 오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멀쩡한 사람 있습니까? 적나라한 오늘 우리들의 실상입니다. 괜히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태연한 척 해서 그렇지 우리는 다 환자들입니다. 우리 가운데 마음의 병, 상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겉만 멀쩡하지 속은 다 시커멓게 탔습니다. 지금도 속으로는 피흘리며 울고 있습니다. 한 꺼풀 화장만 벗기면 그 무엇으로도 치유하지 못할 깊은 상처들이 적나라하게 다 드러납니다. 남편 때문에, 아내 때문에, 자식 때문에, 같은 교회 교인 때문에, 구역 식구 때문에, 목사 장로 집사 때문에 ... . 우리는 날마다 피 흘리며 삽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시면 그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신다고 합니다. 이사야서를 보면 그가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갈대는 황무지의 잡초입니다. 안 그래도 쓸모없는데 그 갈대가 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그것마저 꺾지 않고 싸매신다고 합니다. 짐승들은 절대 상한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완전히 소외시키고 왕따시키고 도태시킵니다. 이게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밀림의 법칙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상한 갈대도 고치시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주님이 우리 마음의 상처를 싸매시면 아무리 오래된 지병도 다 깨끗이 낫습니다. 금년 성탄절에는 마음 상한 자들이 다 주님으로부터 고침을 받아 모두 밝고 건강한 마음으로 살아가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다음으로는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오늘 본문 1절 하반절입니다. ‘포로된 자에게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라고 합니다. 실제 이사야가 이 말씀을 선포할 때는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가 있었습니다. 또 그로부터 690년이 지난 주님 시대는 로마의 식민지로 수탈을 당하며 억압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메시아가 오시면 포로에게 자유를 주고 해방을 준다는 이 메시지는 정말 힘이 되었을 겁니다. 오늘 우리는 포로가 아닙니다. 우리는 자유인들입니다. 일제로부터도 이미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자유인입니까? 우리가 그 어떤 것의 포로도 아닙니까? 혹 마귀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는 분 안 계십니까? 우리 중 과연 몇이나 돈과 명예, 권력, 탐욕으로부터 진정한 자유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을까요? 과연 몇이나 두려움, 염려, 악습, 옛 사람으로부터 자유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지금도 병마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는 분도 있습니다. 분명 신분은 자유인인데 아직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다. 이게 우리의 아픔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은퇴 장로님은 내일모레가 80입니다. 아직도 그분은 담배를 못 끊고 있습니다. 지난 45년간 100번도 더 결심했습니다. 금식도 하고 혈서도 수없이 썼습니다. 그런데 안 됩니다. 내 의지나 내 노력으로는 결코 자유할 수 없습니다. 올해도 우리가 새롭게 성탄하실 주님을 꼭 만나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만이 우리를 자유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 36절입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주님이 자유를 주셔야 참된 자유입니다. 내 삶을 결박하고 있는 악습이든, 병마든 주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면 일거에 해방되는 겁니다. 이런 기대와 확신으로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게 대강절입니다.

마지막으로 슬픈 자를 위로하십니다. 본문 2절 하반절입니다.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지난주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으로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졸지에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슬픔은 어떠며,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의 마음의 상처가 어떻겠습니까? 생각해보면 다들 기쁨 속에 살기를 바라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늘 눈물이고 한숨입니다. 단 하루도 단 한 순간도 근심 없이, 아픔 없이 사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백주에 머리 위로 포탄이 떨어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런데 아픔과 슬픔보다 더 큰 비극은 어디에도 위로받을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더러 슬픈 일을 당해도 누군가 위로해주면 그래도 견딜만한데 우리에게는 그게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누가 과연 우리의 진정한 위로자가 될 수 있을까요? 누가 과연 우리 눈에서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요? 남편입니까? 아내입니까? 자식입니까? 구역식구입니까? 목사입니까? 최후의 순간에 내게 위로가 될 것 같습니까? 그들이 오히려 나를 슬프게 하고 외롭게 하고 아프게 하는 장본인들은 아닙니까? 누구도 나의 진정한 위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주님만이 나를 위로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만이 내 슬픔을 어루만지실 수 있습니다. 성경은 주님이 오시면 나의 모든 슬픔을 위로해 주시고, 슬픔을 기쁨으로 찬송으로 바꿔주신다고 합니다. 사실입니다. 주님을 만나면 웃을 수 있습니다. 주님만이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합니다. 이 사실을 확신하십시오. 그리고 올해도 성탄을 진심으로 바라시고 성탄을 맞이할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기다림의 계절인 대강절이 성탄하실 주님을 뵙고 위로와 복을 누리게 하는 은혜로운 절기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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