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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너는 내 것
설교본문 사 43:1-7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9-01-06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90106m.mp3

20190106m

사 43:1-7

너는 내 것


(사 43:1-7, 개정) [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4]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5]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6]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자신에 후한 분도 있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습니다. 남에게는 관대한데 자신에 대해서는 대단히 인색한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심지어 어떤 분들은 자학이라 할만큼 자신에 대해 가혹한 분도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어떻게 보실까요? 1절 하반절입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주님은 우리를 단체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나를 콕 찍어 부르셨습니다. 1절을 보면, 야곱아, 이스라엘아 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개인적으로 지명하여 부르셨습니다. 우리나라 기독교 인구가 약 20% 정도됩니다. 여기에 우리가 다 속한 겁니다. 4절 상반절입니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7절도 보십시오.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 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더없이 귀하게 여기십니다. 이 사실이 실감나십니까? 


그러면 어째서 하나님은 나를 왜 이토록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시는 걸까요? 우리는 거의 우리 가치를 인정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왜 이렇게 말씀하실까요? 하나님이 나를 소유하기 위해 값비싼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3절입니다.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하나님은 우리를 공짜로 당신의 소유로 삼으시지 않고 엄청난 몸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속량물은 다른 사람 소유의 노예를 내 소유로 삼기 위한 몸값입니다. 속전이라고도 합니다. 우리는 원래 다 남의 종, 죄의 종, 사탄의 노예, 세상의 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시며 나를 지명하여 이제부터 너는 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속량물로 지불하신 애굽, 구스와 스바는 어떤 나라입니까? 애굽은 이집트, 구스는 에티오피아, 스바는 지금의 예멘입니다. 지금은 이들 나라들이 별 볼일 없습니다. 예멘은 지금도 내전 때문에 우리나라에도 약 천 명이 난민으로 들어와 있습니다만, 당시에는 이들 나라들이 강대국이었습니다. 그런 나라들을 우리 몸값으로 하나님이 지불하셨다는 겁니다. 이것은 과장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 몸값이 가장 비싼 사람은 LA 다저스의 류현진 선수와 영국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의 손흥민입니다. 류현진 선수의 연봉이 우리나라 돈으로 약 202억입니다. 손흥민 선수는 주급이 2억이 넘고, 이적료는 1200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도들의 몸값은 이런 야구나 축구 스타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이것을 우리가 진지하게 깨달아야 우리가 그동안 평가절하해온 자존감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값비싼 대가로 애굽, 구스, 스바를 치렀다고 하는데, 실제로 하나님은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한 속량물로 삼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께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한 보배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투자한 게 너무 크기 때문에 절대 우리를 포기하거나 소홀히 관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019년 새해 벽두부터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하십니다(1, 5절). 그러면 우리가 이 새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갈수록 새해가 두려운데 말입니다. 모든 게 불확실하고 위협적이고 도처에 복병들이 깔렸지 않습니까? 하나님도 우리의 이런 현실과 한계와 약함과 부정적 정서를 잘 아시기에 좀 더 우리를 구체적으로 격려하십니다.


내가 어떤 불도 물도 너를 해치지 못하게 할 터이니 두려워말라고 하셨습니다. 2절입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새해 우리 앞에는 아예 그 어떤 물이나 불이 없다고 하신 게 아닙니다. 올해도 우리 앞에 여러 시련이 예상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혹독한 물과 불을 건널 때 하나님이 그 어떤 물이나 불도 너희를 침몰시키거나 사르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일찍이 하나님이 너는 내 것이라 지명하여 부른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그들의 출애굽 여정 앞에 갑자기 홍해가 나타났습니다. 무시무시한 물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털끝 하나 상하지 않고 그 바다 한가운데를 안전하게 통과했습니다. 가나안 문턱에 그들이 다다랐는데 물이 잔뜩 불어난 위협적인 요단강을 만납니다. 요단강 역시도 상류 쪽에서 댐처럼 물이 쌓이면서 바닥을 드러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강 마저도 안전하게 도강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뜨거운 사막의 햇볕도 그들을 사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40년간 뜨거운 광야를 유랑했지만 그 누구도 뜨거운 태양에 상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바벨론 포로시대 다니엘의 친구 세 사람이 평소보다 7배나 뜨거운 풀무불에 던져집니다. 그 풀무불 속에 세 사람이 던져졌는데 한 사람이 더 보였습니다. 주님이셨습니다. 그 누구도 머리카락 하나 상하지 않았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죽고 다리오가 왕위를 계승합니다. 다리오는 다니엘을 총리로 발탁합니다. 다니엘은 다른 신하들의 시기와 질투로 사자굴에 던져집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조금도 상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주님이 2019년 새해에도 바로 그렇게 너와 함께할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올해 겪게 될 어려움이 홍해나 풀무불이나 굶주린 사자굴보다 더 하겠습니까? 염려하지 맙시다. 주님이 우리를 지키십니다. 


하나님을 그동안 네가 잃은 것을 다 회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 역시도 우리에게는 복 된 약속이 아닐 수 없습니다. 6절 상반절입니다.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우리는 세상을 살며 많은 것을 얻기도 하지만 잃기도 합니다. 그런데 새해에는 우리가 그동안 잃어버린 것들을 주님이 되찾게 해주십니다. 주님이 명령하여 먼 곳으로부터 돌아오게 하십니다. 그동안 잃었던 지위나 건강 등 모두를 회복시키겠다고 하십니다. 해가 지날수록 우리는 상실감 속에 살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상실한 것들을 주님이 회복하게 해준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부디 주님이 회복시키실 때 되돌려 받을 채비를 합시다. 북쪽을 향해서 내놓으라, 남쪽을 향해서 가두어 두지 말라고 주님이 명하시면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올해 여러분은 무엇을 되찾고 싶으십니까? 바라는 바가 없으면 응답도 없고, 다시 찾고 싶은 게 없으면 회복도 없습니다. 주님은 소경에게도 바라는 바를 먼저 물으셨고, 대답을 듣고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잃어버린 건강, 막대한 손실, 가정의 화목, 묶인 일들, 상실한 지위나 명예를 되찾게 해달라고 구체적으로 기도합시다. 그래서 올해는 모두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회복하고 되찾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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