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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성탄을 기다리며
설교본문 사 61:1-3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7-12-03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71203m.mp3

20171203m

사 61:1-3

성탄을 기다리며


(사 61:1-3, 개정)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평생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이러한 만남들이 내 운명을 결정합니다. 그런 점에서 만남은 우리 인생에 중요한 사건입니다. 친구 한번 잘못 만나거나 배우자 잘못 만나면 인생 망칩니다. 평생 불행해집니다. 그런데 우리의 만남 가운데 가장 중요한 만남을 꼽는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이 세상 그 어떤 만남보다 결정적인 만남은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주님과의 만남이 왜 그토록 중요할까요? 어떤 분은 주님과의 만남쯤은 만나도 안 만나도 그만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부모나 선생이나 배우자와의 만남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나 배우자와의 만남은 나의 생전에만 유효한 만남입니다. 부모가 나를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내 영원을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그것은 오직 주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과의 만남에서 내 영원한 운명이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대가나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주님과 만나야 합니다. 아무리 부모를 잘 만나고, 좋은 선생을 만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 마음 편히 산다 해도 주님을 못 만나면 그 인생은 불행합니다. 그러나 다른 만남이 아쉽고 성에 덜 차도 주님만 확실히 만났다면 괜찮습니다. 주님과의 만남이 다른 모든 만남을 상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과의 만남이 우리에게 우선적이고 절대적이고 결정적입니다. 


교회력에 의하면 오늘이 대강절 첫째주일입니다. 대강절이 어떤 절기인지는 아시지요? 성탄절 4주 전부터 매주 촛불을 하나씩 밝혀가며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성탄절은 2000년 전에 있었던 주님의 성탄을 기념하는 절기가 아니라 올해도 우리 가운데 새롭게 성탄하실 주님을 만나는 절기입니다. 그 감격을 미리 준비하며 채비하는 절기가 한 달간의 대강절입니다. 주님은 올해도 반드시 오십니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오시지 않고 반드시 기다리는 자, 준비된 자에게만 오십니다. 그렇게 주님은 맞춤형으로 오십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고 하는데, 그냥 평화가 아니라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 중에 평화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평화라는 말입니다. 올해도 기다리는 자에게 주님이 새롭게 오셔서 어떻게 한다고 합니까? 


본문 1절을 보면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친다고 하십니다. 사람 사는 세상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사야가 2700년 전의 예언인데, 당시도 이미 이 세상에는 마음에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성탄하시면 제일 먼저 마음 상한 자들부터 고쳐주시겠다고 합니다. 아닌 게 아닐 이사야 1장 5절 이하입니다.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이사야 당시도 마음 상한 사람이 많았는데 어디서도 고침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이사야 시대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의 아픔이요 자화상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상처나 아픔이 없습니까? 다른 사람 앞에서는 멀쩡한 표정을 짓지만 우리 가운데 상처 없이 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올해도 주님이 오시면 이런 상처 입은 마음부터 어루만지고 고치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시는 성탄 소식이야말로 아름다운 소식입니다. 이사야 421장 3절입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갈대는 잡초입니다. 수천 만 군락지에 있으면 낭만적인 가을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밭에 있어 보십시오. 천하에 그렇게 성가신 잡풀도 없습니다. 더구나 그게 상한 갈대라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것마저도 꺾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 상처 난 갈대마저도 다시 싸매고 고치신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고맙고 눈물겨운 말씀입니까! 사람이든 짐승이든 약한 것들은 도태됩니다. 이게 약육강식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주님께 상처 받은 마음을 치료받는 은혜를 체험하고 싶으십니까? 올해도 주님이 오셔서 나를 어루만지고 내 마음의 깊은 상처와 아픔을 치유해 주시기를 바라십니까? 아무리 오래된 마음의 지병도 주님이 손쓰시면 깨끗해집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올해도 주님의 성탄을 고대하며 준비하는 이유입니다. 올해는 여러분의 마음이 다 치유받고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고 따뜻한 가슴으로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다음은 주님이 오시면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신다고 합니다. 1절 하반절입니다.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실제 이사야가 이 말씀을 선포할 당시에는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앗수르에 잡혀가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690년이 지나 주님이 성탄하실 때는 이스라엘이 로마 식민지였습니다. 그러니 메시아가 오시면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주신다는 이 말씀이 얼마나 그들에게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식민지 백성도 아닙니다만, 우리가 그 어떤 것으로부터 자유한가? 노예가 아닌가? 라는 물음에 자유할 분은 없을 겁니다. 우리가 돈이나 명예로부터 자유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우리 가운데 누가 옛 삶의 방식이나 악습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병마에 포로가 되어 고통 가운데 있는 분도 있습니다. 이런 게 우리의 아픔이고 분열이며 모순입니다. 분명 신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유인이며 천국 백성인데, 현실은 여전히 마귀가 부리는 대로, 죄가 우리를 조종하는 대로 살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내 의지나 내 노력, 힘으로는 그 무엇으로부터도 결코 자유할 수 없습니다. 그게 올해도 우리가 반드시 성탄하실 주님을 만나 뵈어야 할 이유입니다. 오직 주님만 나를 진정으로 자유케 하실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 36절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그게 무엇이든 주님은 일거에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자유케 하시면 우리는 진정한 자유인이 됩니다. 올해는 꼭 주님을 제대로 만나십시오. 그래서 반드시 갇힌 자에게 놓임을 베푸시는 참 자유를 누리기를 기원합니다. 


다음으로는 슬픈 자를 위로하신다고 합니다. 2절 하반절 이하입니다.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생각해 보면 인생은 참으로 슬픈 존재입니다. 우리는 기쁨과 행복 속에 살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현실은 눈물과 한숨입니다. 단 한 순간도 근심과 아픔 없이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더 큰 불행은 어디서도 진정한 위로를 받을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절망적이라 해도 위로 받을 곳이 있으면 그나마 견딜 수 있는데 갈수록 그런 것이 사라진다는 게 불행입니다. 자살하는 사람도 그 사람 가까이에서 한마디의 위로를 받으면 그 최악의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요즘은 누구에게서도 진심 어린 위로의 말을 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서는 누구도 우리의 진정한 위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남편, 아내, 자식, 친구, 직장 동료, 구역 식구, 목회자가 내게 힘과 도움이 되겠습니까? 오히려 그들이 나를 힘들게 하고 외롭게 하는 장본인들 아닙니까?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내게 상처를 주고 있지 않습니까? 다시 말해 사람들 가운데는 진정한 위로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주님이 오시면 그분이 내 모든 슬픔을 위로하신다고 합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반전시킨다고 합니다. 나로 하여금 그 실존적이고 원초적인 고독을 이기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올해도 성탄하실 주님을 만나시면 누구나 근심 대신 찬송을 하고, 슬픔 대신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은총을 베푸시면 얼마든지 새로워지고, 새 출발할 수 있습니다. 아픈 만큼, 슬픈 만큼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습니다. 


부디 과거 어느 해보다 더 절실하게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여 이러한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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