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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왜 대강절인가?
설교본문 사 61:1-3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6-11-27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61127m.mp3

20161127m 

사 61:1-3

왜 대강절인가?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이 벌써 대강절 첫째주일입니다. 대강절은 영어로 어드밴트(Advent)인데 이것은 오심이라는 뜻의 라틴말 아드벤투스(adventus)에서 온 말입니다. 대강절은 매주 촛불 하나를 켜면서 주님 오심을 준비하는 절기입니다. 대강절은 기다림의 절기입니다. 왜 대강절입니까?


주님은 아무에게나 오시지 않기에 대강절입니다. 주님은 기다리는 자에게만 오십니다. 그래서 기다림의 절기가 있는 겁니다. 제가 알기로 2천 년 전 첫 성탄 때 가장 모범적으로 대강절을 지킨 사람은 누가복음 2장에 나오는 시므온과 안나입니다. 시므온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뵙기 전에는 절대 죽을 수 없다며 버틴 사람입니다. 안나는 84세 였는데 성전에서 밤낮 금식하며 오직 주님만을 고대한 여인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성탄한 지 8일째 된 아기 예수를 품에 안습니다. 그때 시므온이 ‘하나님 이제는 저를 데려가셔도 여한이 없다’고 합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수많은 사람으로 붐볐습니다. 그럼에도 성령의 계시로 성탄하신 주님을 품에 안은 사람은 딱 두 사람, 시므온과 안나였습니다. 왜냐면 그 두 사람만이 진심으로 성탄을 기다리며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38년 된 환자도 마찬가집니다. 당시 베데스다 연못가에는 수많은 환자가 있었지만, 주님은 그를 찾아가십니다. 그가 가장 고참 환자여서가 아니라, 그는 자기를 도와주던 가족, 친지, 친구도 다 포기하고 떠난 절망의 자리에 누워서도 결코 포기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구원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죽음보다 모진 기다림이 주님을 부른 것입니다. 주님이 자의로 그를 찾아가셨다기보다는 그가 주님을 호출한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우연히 주님을 만날 사람은 없습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의 성탄을 고대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주님도 올해도 그런 자에게만 오십니다. 


아무에게나 오지 않고 기다리며 준비하는 자에게 오시는 주님의 성탄의 은혜는 무엇입니까? 본문 1절입니다.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왜 오늘 본문이 마음 상한 자를 고치는 일을 주님이 성탄하시며 하실 첫 번째 과제로 꼽았을까요? 예나 지금이나 상처 받은 마음, 피 흘리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그만큼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이 지금으로부터 2700년 전 일입니다. 그때도 마음이 상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많았다는 겁니다. 본문 당시의 사정을 보면, 이사야 1장 5절 이하에 잘 나옵니다. “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수많은 사람의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였음에도 그걸 어디서도 싸맴을 받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게 그대로 우리의 오늘의 모습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상처나 아픔이 없으십니까? 멀쩡한 표정을 짓지만, 마음에 상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모진 마음의 상처로 피 흘리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어루만져 주시지 않으면 누구도 손을 쓸 수 없는 영혼의 깊은 아픔입니다. 그래도 다행히 올해도 주님이 오셔서 우리의 상처 받은 마음부터 고쳐주신다고 합니다. 주님의 성탄이야말로 본문 1절 말씀처럼 아름답고 복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사야 42장 3절도 보면,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갈대는 잡초입니다. 갈대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면 관광 자원이라도 되지만, 그게 밭에 있으면 성가신 풀일 뿐입니다. 더구나 그게 상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그것마저도 꺾지 않으시겠다고 합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은 자연의 법칙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절대 그렇게 하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여러분의 상처 받은 그 마음을 치료받고 싶으십니까? 올해도 주님이 오셔서 나를 어루만지고 싸매시면 아무리 깊고 오래된 마음의 지병도 다 깨끗해집니다. 부디 금년 성탄절에는 반드시 주님을 뵙고 모두 치유 받아 보다 맑고 따뜻한 가슴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다음은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신다고 합니다. 1절 하반절입니다.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당시의 상황은 수많은 사람들이 앗수르로 잡혀가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690년 후에 주님이 성탄 했을 때는 로마 식민지로 온갖 수탈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 말씀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종도 노예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정말 포로가 아닙니까? 우리 가운데 몇이나 돈이나 명예, 권력, 탐욕으로부터 진정 자유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 가운데 누가 악습이나 옛 삶으로부터 자유하며 살고 있을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모진 병마에 포로가 되어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분명 신분은 자유인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현실은 여전히 마귀가 부리는 대로 마귀의 종이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 힘이나 노력으로는 그 무엇으로부터도 자유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올해도 우리가 성탄하실 주님을 만나야할 이유입니다. 요한복음 8장 36절입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그게 무엇이든 주님은 그 모든 것을 일거에 다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부디 올해는 주님을 제대로 만나, 갇힌 자를 놓아주시는 참 자유를 누리십시다.


주님은 슬픈 자를 위로하신다고 합니다. 2절 하반절 이합입니다.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슬픈 자에게 화관을 씌워주시고, 근심 대신 찬송을 주신다고 합니다. 인생은 참으로 슬픈 존재입니다. 다들 기쁨 가운데 살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늘 눈물이고 한숨입니다. 단 한 순간도 근심과 아픔 없이 사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디서도 위로 받을 데가 없습니다. 자살하는 사람도 누군가 위로해 주면 그 최악의 위기를 넘길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소견입니다. 요즘은 몰라도 군대라는 곳은 아무도 위로해 주거나 격려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게 사병들의 가장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맞고 나서도 어디 가서 훌쩍 거릴 곳이 없었습니다. 맞아도 위로 받을 곳이 없었다는 겁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누가 우리의 진정한 위로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 해도 그들이 나를 힘들게 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우리의 실존적이고 원초적인 고독입니다. 본문은 주님이 오시면 위로해 주신다고 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성탄하실 주님을 만나시면 누구나 근심 대신 찬송하고, 슬퍼하는 대신 기뻐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가 온통 슬픔에 빠졌고, 패닉 상태입니다. 앞으로 이게 어디로 갈지 걱정입니다만, 주님이 오셔서 위로해 주시면 얼마든지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새 출발을 할 수 있습니다. 부디 어느 해보다 절실한 심정으로 주님 성탄을 준비하셔서 이러한 치유와 회복의 은총을 체험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