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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보배롭고 존귀한 당신
설교본문 사 43:1-7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6-01-31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60131m.mp3

20160131m

사 43:1-7

보배롭고 존귀한 당신


[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4]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5]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6]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사실 우리는 생각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인색합니다. 물론 후하고 너그러운 분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의외로 자기 자신에 대해 가혹한 사람이 더 많습니다. 지난 주중에 어떤 분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분은 자기 남편에게 늘 ‘제발 당신 그렇게 살지 마.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먹고, 입고 싶은 게 있으면 입으면서 사람답게 살라’고 했답니다. 가족들은 그렇게 살라고 하면서 정작 자기는 그렇게 못 산다는 겁니다. 그래서 남편이 불쌍해서 죽겠다는 겁니다. 왜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혹독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여러 가지로 자신을 평가절하 하는데 반해서 주님은 우리를 그렇게 보시지 않습니다. 4절입니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절대 천한 존재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더 없이 사랑스런 존재라고 하십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얼마나 주님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게 보였으면,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다고 하십니다. 나를 불특정 다수와 도매로 부르신 게 아니라 내 이름을 콕 찍어 불러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다는 겁니다. 그만큼 내가 존귀하고 보배로우며 사랑스럽기 짝이 없는 존재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자학은 죄입니다. 자존감을 가져야 합니다. 참으로 황송하고 복 되고 영예로운 일입니다. 나는 나를 하찮게 생각하는데, 주님은 나를 고귀하게 생각하십니다. 둘도 없는 사랑의 대상이라고 하십니다. 1절 상반절에서 “야곱아”라고 부르십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를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격려하시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불확실성 그 자체가 우리에게는 두려움입니다. 그런데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용기를 가지며 담대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내가 어떤 불도, 어떤 물도 너를 해치지 못하도록 지킬테니 두려워말라’고 하십니다. 2절입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우리 앞에는 어떤 강도, 불도 없다가 아니라 올해도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무수한 강과 불을 만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두려워말라고 하십니다. 내가 안전을 담보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물이든 불이든 만나더라도 두려워말고 담대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너는 내 것이라며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신 주님이 이렇게 우리를 격려하고 계십니다. 물로부터 불로부터 안전하게 지킬 것이니 두려워말라, 큰 기대를 갖고 늘 밝은 모습으로 건강하게 살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너는 내 것이라 부르신 선민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출애굽 여정 앞에, 그들의 가나안 행군 앞에 홍해가 나타납니다. 홍해는 무시무시한 물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털끝 하나 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약 200만이었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도 익사자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바다를 육지처럼 건넜습니다. 홍해가 그들을 해치지 못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가나안 문턱까지 이르렀는데, 봄이어서 잔뜩 불어난 요단강을 만납니다. 요단강을 건너야만 가나안에 발을 디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도히 흐르는 요단강도 그들을 해치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에 발을 넣자마자 물이 상류에 쌓였다고 합니다. 홍해도 요단강도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을 해코지 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뜨거운 사막의 햇볕도 그들을 해치지 못했습니다. 구름기둥으로 시원한 에어컨을 만들어서 일사병으로 죽지 않게 하셨습니다. 40년간 사막을 유랑했는데, 불 가운데로 지날 때 그 불이 너희를 사르지 못하게 하리라는 말씀이 이뤄졌습니다. 또한 그들은 바벨론 포로시절 느부갓네살 왕 때 우상 앞에 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풀무불에 던져졌습니다. 얼마나 그 불이 뜨거웠는지 그 형을 집행하던 사람이 타 죽었습니다. 그런데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불에 타지 않았습니다. 분명 세 사람을 던져 넣었는데, 그 풀무불 안에 네 사람이 보이더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그들을 지킨 겁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는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느부갓네살이 죽고, 다리오가 왕이 되었습니다. 다리오는 다니엘을 총리로 발탁한 사람입니다. 다니엘이 하루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이유로 굶주린 사자굴에 던져집니다. 이튿날 다리오 왕이 혹시나 싶어 사자굴에 와서 다니엘을 부릅니다. 그런데 뜻 밖에도 사자굴 안에서 다니엘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왕이여 만수무강하옵소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머리카락 하나 상하지 않고 여기 살아있다고 했습니다. 다리오 왕은 당장 다니엘을 구하고, 그를 모함했던 사람들을 사자굴에 던져넣습니다. 그들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사자들이 삼켰다고 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부모인들, 형제인들, 내 남편 내 아내인들, 풀무불까지, 굶주린 사자굴까지 함께 갈 수 있습니까?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신 주님은 분명 거기까지도 함께 가서 너희를 지키겠다고 하십니다. 올해 우리 상황이 최악이라 해도 풀무불만 하겠으며, 굶주린 사자굴만 하겠습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담대하십시오. 주님이 함께하신다는 기대를 가지십시오.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십시오. 


다음은 네가 그동안 잃었던 것을 되찾게 해주시겠다고 합니다. 그러니 두려워말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 역시도 우리에게 대단히 복 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6절입니다.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많은 것을 얻기도 하지만, 잃기도 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잃어서 허무했던 많은 것을 되찾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포로로부터 돌아오게 하시고, 그동안 잃었던 명예, 건강도 다 회복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런저런 상실 속에서 허전해 합니다. 그런데 그동안 잃었던 것들을 되찾게 해주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되돌려 받을 채비를 갖추십시오. 우리 쪽에서 준비되면 됩니다. 우리가 문제입니다. 우리 편에서 그릇을 준비하지 못한 게 문젭니다. 돼지에게는 절대 진주를 던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불가능해도 하나님이 못 하실 일은 없습니다. 여러분, 올해 무엇을 되찾고 싶으십니까? 하나님께 말씀하십시오. 요구하십시오. 바라는 바가 없으면 응답도 없습니다. 되찾고 싶은 게 없으면 회복도 없습니다. 주님은 소경에게도 ‘내가 뭘 해주기를 바라느냐’며 확인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반드시 소원을 확인하십니다. 잃어버린 것들 되찾아 달라고 기도하십시다. 그렇게 주님께 요구하십시다. 그러면 반드시 우리의 소원을 들어 주십니다. 잃어버린 건강,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회복시켜 주십시오. 내 가정의 화목함을 회복시켜 주십시오. 상실한 지위와 명예를 회복시켜 주십시오. 올해는 모두가 바라는 것들이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나를 보호하시고, 회복하도록 하겠다고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소유로 삼으시기 위해 정말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가셨습니다. 주님은 엄청난 값을 주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3절 하반절입니다.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 엄청난 속량물을 내놓으신 겁니다. 이미 우리는 사탄의 노예, 세상의 포로들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시고 당신의 소유로, 재산으로 우리를 삼으셨습니다. 4절 하반절도 보십시오.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요즘 야구나 축구선수들 몸값이 대단합니다. 선수 한 사람이 수 백 억, 수 천 억대에 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 값비싼 존재들입니다. 성도들의 몸값은 운동선수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우리 몸값으로 지불한 겁니다. 우리는 우리를 과소평가하지만, 하나님 눈에는 우리가 너무도 보배로운 존재입니다. 하나님께 주님은 어떤 존재입니까? 이 세상을 다 주어도 바꿀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도 이 신비를 다 헤아리지 못합니다. 주님이 투자가 되었기에 하나님께 우리는 둘도 없는 값진 존재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올해는 모두가 하나님의 가장 보배롭고 존귀한 존재로 자리매김하셔서 물을 만나든 불을 통과하든 해가 없기를 바라고, 잃었던 모든 것을 되찾는 회복의 역사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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