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2370
Extra Form

2008년 1월 20일 여전도회주일 낮예배

본문: 히 13:5-9

제목: 일정하신 하나님

  [5]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9]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우리의 구원은 어디에 근거한 것입니까? 믿음입니까?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까? 많은 분들이 이렇게 생각하기에 자꾸만 흔들립니다. 믿음이 약해지면 구원에 대한 확신도 흔들입니다. 주님이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믿음은 구원의 결과입니다. 나의 구원에 대한 응답이 믿음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주권적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무조건 우리를 구원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만큼이나마 믿게 된 것입니다. 구원의 결과물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신비요 기적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절대적이고 영원합니다. 내 믿음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방적인 주권행위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하시듯이 하나님의 주권행위도 영원합니다. 8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호세아 6장 3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 요즘 지구온난화가 우리의 화두입니다. 태양이 갈수록 더 뜨거워지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고 우리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때문입니다. 새벽빛이 뜨거워지기에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바로 새벽빛처럼 일정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도 한결같습니다. 이 하나님의 구원이 어떠한지 좀 더 생각해 보십시다.

  우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일정하고 동일합니다. 5절입니다: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이것은 약속입니다. 이 5절 말씀은 돈 얘기와 함께 하신 말씀입니다. 돈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돈은 무자비하고 잔인합니다. 돈은 사람을 노예로 삼고, 하수인으로 부립니다. <공공의 적>이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가 말하는 공공의 적이 설경구가 붙잡고 늘어진 살인범 이성재입니까?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공공의 적은 돈입니다. 이성재도 18억 돈 때문에 부모를 무자비하게 찔러 죽였습니다. 이성재는 돈의 하수인에 불과합니다. 돈이 우리를 비굴하게 하고 배신하게 하고 원수맺게 하고 살인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평생 돈을 짝사랑하며 숭배합니다. 창세기 35장 3절 이하를 보면, 야곱이 식솔들에게 각자의 이방 신상을 버리라고 합니다. 어떻게 야곱의 식솔들이 이방신상을 갖고 있을 수 있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방신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에 보면,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 주님만 사랑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입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찬송가 447장입니다. 신실하신 주님입니다. 직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사랑하셔서 직분을 주신 것입니다. 사랑 때문입니다. 작년에 집사직 받고 집사노릇 제대로 하신 분 계십니까? 도대체 자기가 집사인줄 아셨습니까? 그럼에도 주님은 올해 또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일정하기 때문입니다. 부디 올해는 이러한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에 올바르게 응답하십시다.

  하나님이 일정하시다는 것은 그 분의 약속이 영원토록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이 일정합니다. 이 약속에 끝까지 책임지십니다. 내주와 맺은 언약은 영불변하시니 그 나라 가기까지는 늘 보호한다는 약속은 영원토록 동일합니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옛 약속과 새 약속입니다. 성경 66권은 모두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히브리서 8장 6절 이하를 보면, 주님이 하나님의 약속과 언약의 보증입니다. 우리가 오늘 죽으면 천국간다는 보증이 성경에 그렇게 적혀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대통령 당선자도, 부모도 약속을 지키지 못하지만 주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신실하십니다. 우리가 약속을 못 지키니까 주님도 그런 줄 생각합니다. 약속을 붙잡으십시다.

  하나님이 일정하시다는 것은 그의 말씀이 영원히 동일하다는 뜻입니다. 9절입니다: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오직 주님의 말씀만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주님의 말씀만은 영원합니다. 세상의 여러 교훈들은 영원한 교훈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 위에 기초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불교는 대단히 관대합니다. 그러나 불교에 비해 우리 기독교는 배타적입니다.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용어도 극단적입니다. 다 죄인이라고 하고, 심판을 얘기하고, 사탄아 물러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다 진리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종교다원주의도 종교는 용어나 이름만 다를 뿐이지 다 같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른 것을 다르다고 할 뿐입니다. 정답과 오답을 확실히 가리자는 것입니다. 진품과 짝퉁을 명품으로 볼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뉴욕에서 시카고로 가는 열차를 무임승차했습니다. 승무원에게 걸렸습니다. 그 사람은 뉴욕타임즈 사회부 기자인데, 신분증을 놓고 나왔으니 봐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승무원이 특실에 뉴욕타임즈 편집국장이 타고 있으니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승무원이 국장에게 이 사람 사회부 기자 맞냐고 했습니다. 국장이 ‘자네가 왠일인가 했습니다.’ 가짜 기자가 편집국장을 붙잡고 감사했습니다. 그랬더니 편집국장이 어차피 나도 가짜라고 했습니다. 자기도 가짜인데 남보고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관대해서가 아닙니다. 가슴이 넓어서도 아닙니다. 서로 속아주며 공모하자는 것이 종교다원주의입니다. 거기에 우리는 결코 타협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만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합니다. 다른 종교는 다 시들고 마릅니다. 새해에는 영원히 시들지 않는 주님의 말씀으로 새로워지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