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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4일 수요성경공부 히브리서 강해 42
본문: 히 13:10-19

[10]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나니 [11]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13]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14]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 [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18]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 [19] 내가 더 속히 너희에게 돌아가기 위하여 너희가 기도하기를 더욱 원하노라


구약 시대를 살았던 하나님의 백성도 죄를 지으면 짐승으로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도 죄를 짓는데 왜 그들처럼 속죄제를 드리지 않습니까? 우리가 죄를 지었다고 양이나 염소를 잡아 바치지 않습니다. 12절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이 대목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구약시대처럼 짐승의 피로 속죄제를 바치지 않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과거와 현재 또 미래의 죄까지 주님이 속하셨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우리가 여전히 죄를 지으며 살지만 속죄제가 필요치 않게 된 겁니다. 속죄제가 번거로워서 그만하는 게 아닙니다. 구약시대는 예수님 이전 시대였기에 짐승의 피를 바쳤습니다. 우리는 주님 이후 시대를 살기에 짐승의 피는 더 이상 필요치 않습니다. 짐승의 피와 고기는 죄지을 때마다 바쳐야 합니다만, 주님의 희생은 짐승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값진 희생이기에 단 한 번에 모든 것을 충족합니다. 주님은 값이 없는 분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피는 보혈입니다. 주님의 피는 전 인류의 모든 죄를 단 번에 대속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제사는 필요합니다. 우리가 지금 모여서 예배하며 성경공부를 하는 것도 제사입니다. 구약시대에 했던 그런 제사의 성격은 아니지만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점에 대한 말씀입니다. 어떤 제사를 우리가 드려야 합니까?

찬송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15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찬송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찬송의 제사는 감사 찬송의 제사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의 제물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으로 제사를 바치는 것이 지당합니다. 찬송은 예배의 부속품이 아닙니다. 예배의 한 순서라기보다는 찬송 그 자체가 제사입니다. 우리가 훗날 천국에 가서 무엇을 할 것 같습니까? 요한계시록에 보면 천상의 장면이 나오는데, 오직 찬송밖에 없습니다. 24장로가, 천군천사가, 흰 옷 입은 성도가, 네 생물이 찬송합니다. 우리가 지금 찬송하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제사입니다. 이 땅에 살 동안 부지런히 찬송 연습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에 가서 찬송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서와 우리가 그렇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본래 하나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감정의 본체이십니다. 감정이 풍부한 분입니다. 노래를 부르면 즐겁지 않습니까? 우리가 찬송하면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찬송할 때 기쁨이 느껴집니까? 찬송할 때 죽지 못해 하면 얼마나 힘이 듭니까? 찬송할 때 내 안에서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찬송할 때 감동이 오고, 깨달음이 오고, 기쁨이 옵니다. 찬송을 많이 부르면 감정이 풍부하신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찬송에 인색하면 안 됩니다. 찬송을 부를 때 하나님의 심금을 울립니다. 기도할 때도 찬송을 여러 장 부르면 참 좋습니다. 어쨌든 주님으로 인해 찬송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15절 하반절은 의미심장합니다.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우리 입으로 맺는 가장 아름다운 열매는 찬송입니다.

산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16절입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선행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종교적 의식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죽은 제사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그게 전부가 아니고 발대식입니다. 교회에 나와 예배할 때 결단하고 구호를 외치고 나서 밖으로 나가 삶으로 본격적인 예배를 드리는 게 맞습니다. 예배 때만 거룩하고 밖에서는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이게 바로 이중적 생활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제일 싫어했던 부분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행태를 두고 ‘회칠한 무덤’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걸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예배드릴 때는 다 천사인데, 교회만 나가면 서둘러 다른 마스크를 씁니다. 우리는 변신의 귀재입니다. 이런 것은 예배가 아니라는 겁니다. 나가서 남을 도와주고 선행을 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입니다. 예배의 현장은 삶의 한복판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살이는 우리가 예배드릴 때의 이 표정 그대로라야 합니다. 어쨌든 예배와 삶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게 따로 놀았기 때문에 주님이 예루살렘 성전을 허물라고 하신 겁니다.

다음은 복종입니다. 17절입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요즘 순종이나 복종이란 말은 참으로 현실감이 떨어지는 말로 들립니다.

18절은 기도하라고 합니다. 순종과 복종 그리고 기도의 제사를 드리라고 합니다. 찬송이 그 자체로 제사인 것처럼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기도실에 들어가 기도드리는 것이 바로 산 제사입니다.

속죄제, 번제, 화목제 등의 구약 시대의 제사는 우리에게 더 이상 필요 없지만, 제사는 필요합니다. 필요한 제사가 무엇인지를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온몸으로 드리는 제사가 산 제사라는 겁니다. 여기서 몸은 육체가 아니라 ‘소마’인 몸입니다. 삶 자체, 존재 자체의 몸으로 예배를 드리라는 겁니다. 이것이 구약시대의 제사와 우리 시대의 제사가 다른 겁니다. 지금은 내 존재 전부를 바쳐야 합니다. 구약에는 성소나 성막 안에 제단이 있었으나, 지금은 내 삶의 현장이 제단입니다. 내 삶의 현장에서 예배하는 것이 바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