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8661
Extra Form

2009년 6월 17일 수요성경공부 히브리서 강해 41
본문: 히 13:5-9

[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9]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우리의 구원의 근거는 믿음입니까? 많은 사람이 이런 상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이 흔들립니다. 잘 믿을 때는 괜찮은데 신앙생활이 좀 시들해지면 구원이 흔들립니다. 내가 버림받은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믿음은 그 정체가 무엇입니까? 믿음은 구원의 전제가 아니라 구원의 결과물입니다. 우리가 편의상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고 수사학적으로 표현할 뿐이지 그 내용은 구원의 결과로서 믿음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을 보니 구원받은 사람임을 안다는 겁니다. 열매는 실할 수도 있고 부실할 수도 있습니다. 믿음이 좋을 수도 좀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사과나무니까 못난 사과든 잘난 사과든 먹을 수 있는 겁니다.

그러면 믿음이 구원의 근거나 전제가 아니라면, 구원은 어디서 온 겁니까? 황당하지만 우리 구원의 근거는 없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은혜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값을 치르고 사는 것은 선물이 아닙니다. 내게 값없이 주어진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구원은 근거나 이유가 없습니다. 구원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물입니다. 왜 이런 선물을 제게 주십니까? 할 근거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격하는 겁니다. 내가 잘한 게 하나도 없는데, 내가 값을 지불한 적도 없고, 아무리 생각해도 근거가 없는데, 내게 구원이란 선물을 주셨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는 오직 감사뿐입니다. 내게 구원이란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믿는 겁니다. 우리가 잘 믿는 듯하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구원을 획득할 만한 것이 못 됩니다. 우리가 얼마나 불안정합니까? 구원은 영생이요, 지옥이 아니라 천국인데, 우리의 시시한 믿음으로 어찌 구원을 획득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이 일방적이고 주권적으로 선물로 구원을 주실 때만 가능합니다.

본문 8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우리의 구원이 절대적인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께 우리의 구원이 근거하고 있기에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이 영원하신 것처럼 영원하고, 하나님이 절대적이신 것처럼 절대적입니다. 그래서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하는 겁니다. 주었다가 다시 빼앗아 가는 게 아닙니다. 인간은 온갖 짓을 다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안정적입니다. 극단하게 표현하면 우리가 제대로 믿든 안 믿든 구원은 취소되지 않습니다. 창세전에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창세전에 나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시간이 지나고 내가 그것을 깨닫는 순간이 바로 믿는 순간입니다. 내게 주어진 구원은 손톱만큼도 내게 근거를 두지 않습니다. 그러면 큰일 납니다. 하루 아침에 배신하는 나를 어떻게 믿습니까? 호세아 6장 3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 새벽 빛이 일정하지 않으면 생태계가 어찌 유지되겠습니까? 요즘 지구 온난화는 온실가스 때문이지 태양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바로 이 새벽 빛처럼 일정하시다는 겁니다.

우선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일정합니다. 5절입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개역성경에는 ‘결코’가 아니라 ‘과연’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영원토록 동일하게 우리를 사랑하시며 버리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말씀은 돈 얘기를 하며 나온 말씀입니다. 지난주에도 돈 얘기를 했습니다만, 돈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돈은 무자비합니다. 사람들을 모조리 노예로 삼습니다. 돈은 공공의 적입니다. <공공의 적>이란 영화를 보면, 부모를 잔인하게 죽이고 자기와는 상관없는 사람을 죽이는 이성재가 연기했던 그 사람이 공공의 적입니까? 아닙니다. 그를 매수한 돈입니다. 창세기 35장 2절입니다.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어떻게 야곱의 식솔들이 우상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다만 아닌 척할 뿐입니다. 우리는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조차 모를 뿐입니다. 가운데 보좌는 하나님만 모시고 좌우 보좌에는 다 돈입니다. 주님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용하게도 두세 주인을 섬깁니다. 여러분, 주님을 사랑하셔야 합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입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실 분은 주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약속한 것에 동일하십니다. ‘내가 절대 너희를 버리거나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은 영원토록 동일합니다. 주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다 약속입니다. 구약은 옛 약속이고 신약은 새 약속입니다. 구원과 축복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오늘 죽어도 천국 간다는 근거가 성경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약속이 아니라 주님의 약속이기에 영원합니다. 사람은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정치인이든 법조인이든 기업인이든 대통령이든 심지어 신앙인이든 약속을 안 지킵니다. 부모 자식 간에도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영원토록 약속을 지키십니다. 주님은 버리지 않겠다고 하시면 안 버리고, 떠나지 않겠다고 하시면 결코 떠나지 않습니다. 이 약속을 믿으십시다. 우리는 우리가 약속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실까, 정말 기도하면 응답하실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십시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 꼭 필요한 자세가 말씀에 대한 신뢰입니다. 그래야 내게 은혜가 되고 그 말씀이 내게 축복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며 동일합니다. 9절을 보면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면 다른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만 영원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24절 이하입니다.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합니다. 불교는 기독교에 비하면 포용력이 있습니다. 불교에 비하면 기독교는 독단적입니다. 사용하는 용어부터 무섭습니다. 우리는 다 죄인이라고 하고, 죄인은 다 죽고 지옥 간다고 하고 심판 받는다고 하며, 사탄아 물러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관대할 수 없습니다. 다른 종교인들은 우리처럼 극단적이지 않습니다. 서로 비슷하다는 입장입니다. 요즘 종교다원주의가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왜냐면 이것은 관대함이 아니라 사기이기 때문입니다. 비슷하다고 진품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진품과 짝퉁을 가려내야 합니다. 이런 주장은 결코 배타적인 것이 아닙니다. 진품을 가려내자, 정답과 오답을 냉정하게 가려내자는 것은 독선적인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비슷한 게 많아도 진품은 오직 하나입니다. 주님의 말씀만이 진리이기에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에 결단하고 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3장은 히브리서의 마지막 장입니다. 마지막으로 히브리서 기자가 당부하고 있는 말씀, 곧 영원하고 동일하신 주님 말씀을 따를지언정 다른 것에 마음을 주지 말라는 당부를 새겨들으십시다.

T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