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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10일 수요성경공부 히브리서 강해 40
본문: 히 13:1-6

[1]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3]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4]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히브리서 마지막 장에 이르렀습니다. 이 장은 히브리서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우선 형제 사랑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1-2절입니다. “[1]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형제 사랑을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계속해서 하라고 합니다.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이들이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를 잘 대접했습니다. 어느 날 보니 나그네 세 사람이 지나가는데, 나무 밑에서 쉬던 아브라함이 달려가서 기쁜 마음으로 자기 집에 영접합니다. 발과 손을 씻을 물을 내주고, 양을 잡고, 고운 가루로 빵을 만들어 손님을 대접합니다. 창세기의 그 대목을 보면 지나가던 나그네를 그토록 정중하게 대접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원어로 보면 손님이 아니라 그저 지나가는 행인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이 천사였습니다. 그들이 이삭을 낳을 것이라고 얘기해 줍니다. 황당한 이야기에 아브라함도 사라도 웃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을 낳자 이름을 이삭이라고 짓습니다. 이삭은 웃음이란 뜻입니다.

천사는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천사를 많이 만났습니다. 천사는 익명입니다. 나그네로 나타납니다. 항상 자기 신분을 가립니다. 아마 무수한 천사들이 우리 곁을 지나갔을 겁니다. 천사는 이름표를 붙이고 다니지 않습니다. 그런 천사를 기다리지 마십시오. 그런 천사는 세상에 없습니다. 우리 교회로 500원 받으러 오는 분들 많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 가운데 천사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행색이 말이 아닌 별 볼일 없는 나그네를 정중히 모십니다. 아브라함은 이삭 예언만 받은 게 아니고, 조카 롯이 살고 있는 곳이 멸망할 것도 알려줍니다. 결국 거기에서 롯이 살아납니다. 이어지는 3절 말씀입니다. 천사는 학대 받는 자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천사를 놓치지 마십시다. 주님도 낯선 유대인으로 내게 물을 달라하는 구걸자로 사마리아 여인에게 다가갔습니다. 나그네 대접하고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십시다.

두 번째는 가정을 귀하게 여기라고 합니다. 4절입니다.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남자만도 여자만도 아니라 모든 사람입니다. 요즘 얼마나 혼인 알기를 우습게 압니까. 이 시대를 향한 말씀입니다. 성경은 독신이나 금욕을 지지하진 않습니다. 가족 다 버리고 변화산에 올라가 거기에 초막 셋을 짓고 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주님은 산 아래로 내려가자고 하십니다. 많은 분들이 고린도전서 7장을 보면서 바울을 금욕주의로 오해합니다. 거기를 보면 바울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합니다(1절). 독신인 자신처럼 살기를 원한다고 합니다(7절). 오래지 않아 주님이 오실 텐데 재혼하지 말고 독신으로 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바울을 간혹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에베소서 5장에서 결혼에 대해 얼마나 깊고도 풍성한 내용을 말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남편을 예수 그리스도에 비유하고, 아내를 주님의 몸 된 교회로 비유합니다. 하나님도 사람이 독처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좋게 보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다른 피조물을 창조하시고 감동하셨는데, 사람을 창조하시고는 오히려 좋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아담이 독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와를 만드신 겁니다. 돕는 배필을 지으시고 부부가 되게 하신 겁니다. 그래서 성경은 기본적으로 부부를 축복하고 남녀가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을 가장 아름답다고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히브리서 13장은 결혼과 가정을 귀하게 여기라고 합니다. 침소를 더럽히는 자를 하나님이 심판하신다고 합니다. 단테 <신곡>의 지옥편을 보면 지옥 아랫목에는 가룟 유다가 있습니다. 왜냐면 가룟 유다가 배신을 했기 때문입니다. 지옥에서도 제일 낮은 곳에 가는 사람이 배신자들입니다. 거기에 음행한 사람과 우상숭배자들이 같이 있습니다. 음행이든 우상숭배자들이든 다 배신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가정을 지키십시오. 요즘 부부 사이가 좋지 않으면 tm스럼없이 이혼 얘기를 합니다. 이혼이 대세가 되었습니다.

다음은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합니다(5절). 돈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겁니다. 6절도 같은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주님이 어련히 알아서 나의 필요를 채워주실 터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겁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 나오는 말세의 현상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돈을 사랑하는 겁니다(2절). 디모데전서 6장을 보면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합니다. 얼마나 정확한 말씀입니까?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일만 악의 뿌리는 돈입니다. 이혼도 추적해 보면 돈인 경우가 많습니다. 가정이 무너지고 인간관계가 일그러지는 원인이 돈입니다. 성경은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는데, 요즘은 돈을 사랑하는 정도가 아니라 다 돈의 노예가 되어 숭배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최고의 우상은 다른 게 아니라 돈입니다. 무신론자들은 없습니다. 적어도 돈은 섬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돈에 코가 꿰이면 반드시 돈으로 망한다고 합니다. 돈은 언제나 하나의 수단이지 이게 목적이 되면 그 사람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돈이라면 사기도, 살인도, 부모형제를 배신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자식도 죽입니다. 우리가 세상살이하는 동안 돈 없이는 못 삽니다. 그러나 돈이 하나의 수단이 되어야지 돈 자체가 목적이 되면 큰 일 나는 겁니다. 교회도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돈이 하나님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돈을 섬기기 위해 공동체 생활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돈이 목적이 되어 버린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가룟 유다는 돈 때문에 스승을 팔고 자살합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돈 때문에 성령을 속이다가 죽습니다. 빌립보서 3장 19절입니다.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우리가 돈을 상대화해야 돈에 코 꿰이지 않습니다. 돈을 사랑하면 필연적으로 타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정말 돈을 사랑하는 게 만 악의 뿌리입니다. 우리 머리 위에는 오직 주님만 계셔야 하고 돈은 우리 발아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다 알면서도 실제로 되지는 않습니다. 우리 생활을 돌아보면 돈에 시달리며 살지 않습니까? 5-6절 말씀을 기억하십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를 떠나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돕는 보혜사이시니 돈! 돈! 돈! 하며 살지 말라고 합니다. 히브리서가 책을 마무리하며 강조하는 말씀을 들으십시다.

감리교를 세운 영국의 요한 웨슬리는 청빈하게 살면서 돈에 대한 세 가지 원칙을 강조했습니다. 이게 후일 청교도들의 돈에 대한 원칙이 됩니다. 첫째, 최대한 많이 벌어라. 둘째, 최대한 아껴 써라. 셋째, 최대한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써라.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는 최대한 아끼고 남은 것은 하나님과 이웃 그리고 사회를 위해 쓰라는 겁니다. 청교도들의 기부문화가 여기에서 비롯된 겁니다. 미국은 자본주의의 본산 아닙니까? 정말 악착같이 법니다. 그러나 그걸 사회로 환원합니다. 최소한의 유산만 물려줍니다. 거기서 삶의 의미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돈에 대한 주권, 소유권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우리는 관리권만 있습니다. 우리는 주인의 뜻을 최대한 헤아려 주인의 뜻에 맞게 집행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래서 돈에 대한 철저한 청지기 의식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인을 제치고 주인 행세를 합니다. 부디 돈으로부터 자유 하십시다. 절대 돈을 사랑하거나 숭배하지 마십시다. 결국 돈 때문에 망하지 마십시다. 주님이 우리를 절대 버리지 않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