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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포함해 총 34쪽(우리말 번역서는 86쪽이지만)에 불과한 팸플릿. 2009년 <레지스탕스의 발언>이라는 모임에서 행한 저자의 즉흥 연설문. 지난해 10월 프랑스 남부의 한 작은 출판사 <앵디젠>에서 출간하자마자 프랑스 전역을 뒤흔들며 7개월 만에 2백만 부 이상이나 팔린 책. 전 세계에 <분노 신드롬>을 일으키며 지금도 각국어로 속속 번역되고 있는 책 - <분노하라>(Indignez-Vous!).


<나는 여러분 모두가 분노의 동기를 갖기 바란다> <여러분이 뭔가에 분노한다면 … 역사의 강물은 더 큰 정의와 자유의 방향으로 흘러 갈 것이다> <분노할 일을 그냥 넘겨 버리지말라. 찾아서 분노하고 참여하며, 반죽을 부풀리는 누룩이 되라!>
이것은 한창 피 끓는 어느 젊은이의 외침이 아니라 94세, 우리 나이로는 95세가 된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마지막 전사 스테판 에셀의 절규입니다. 모쪼록 그의 이 책이 제 몸 하나 챙기기도 녹록지 않은 세상, 그래서 육체보다도 마음들이 훨씬 더 늙어 모조리 애늙은이 겉늙은이가 되어버린 우리 사회에도 가슴 서늘한 울림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봅니다.

스테판 에셀은 1917년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습니다. 유태계 독일인 아버지 프란츠 에셀은 작가였고, 어머니 엘렌 그룬트도 작가이자 화가요 음악 비평가였습니다. 에셀은 7세 때 부모를 따라 프랑스로 이주했고, 수재들의 집합소라는 파리고등사범학교에 다닐 때는 선배인 장 폴 사르트르를 만나 그의 앙가주망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기도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드골 망명정부에 합류하여 레지스탕스 활동을 벌이다 체포되어 고문과 유대인 강제수용소를 거쳐 사형선고까지 받지만 처형 직전 탈출하여 극적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종전 후에는 외교계에 입문, 1948년 <유엔인권선언문> 작성에 참여했으며 후에는 유엔 주재 프랑스 대사를 역임했습니다. 공직에서 퇴직한 후에도 인권, 환경 등에 관심하며 왕성한 활동을 해 온 사회운동가입니다. 

왜 하필이면 <분노>입니까? 스테판 에셀이 선동하는 <분노>란 대체 어떤 것일까요? 끓어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해 벌컥하고 발산하는 화가 아니라 사회 정의와 공공선의 실현을 위한 정당한 분개요, 정의롭지 못한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고 저항해 고쳐가는 의분이며, <참여의 의지>로부터 우러나오는 자연발생적인 외침입니다. <사랑은 간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은 가버린다. 삶은 어찌 이리 느리고 희망은 어찌 이리 격렬한가!> 에셀이 20대부터 암송해왔다는 아폴리네르의 시 <미라보 다리>의 일부입니다. 시인은 미라보 다리 위에서 흐르는 세느 강을 내려다 보며 사랑과 생의 무상함을 노래했지만 험한 세월에 희망을 걸고 살아 온 고령의 전사는 이제 그 무상함을 뚫고 혼신의 힘을 다해 분노를 외칩니다. <너희가 총대를 넘겨 받으라. 분노하라! 해낼 수 있다! 바꿀 수 있다!> 

그렇습니다. 95세의 레지스탕스 전사가 이렇듯 <격렬한 희망>을 노래하며 <분노하라!>고 선동한다면 우리에게도 아직 절망은 없습니다. 프랑스보다도 훨씬 더 분노하고 저항할 일이 많은 이 땅의 젊은이들이야말로 이 노 전사의 절절한 외침을 에언자의 육성으로 들어 마땅할 것입니다. 이번 집중호우로 서울 우면산과 춘천을 비롯 경기 북부 여러지역의 산사태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실은 이게 다 산을 함부로 건드려 생긴 인재라 하지 않습니까? 또 이번 같은 기록적인 폭우 조차도 인류가 지구를 마구잡이로 훼손해서 생긴 기상이변이라잖습니까? 다시 말해 이게 다 우리가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지 않고, 저항해야 할 때 저항하지 않고, 참여해야 할 때 참여하지 않았음이 부른 값비싼 대가라는 것입니다. 21세기의 진정한 <어른>이자 진정한 <청년>인 스테판 에셀 옹은 또렷하고도 명쾌한 언어로 이제 우리에게 이런 메시지를 던지며 책을 마무리합니다.

<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은 창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