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4.13 17:12

힐링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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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쏟아내는 북한의 막말 위협이 영 마음에 걸렸지만 시국이 수상하여 기도하러 간다며 둘러대고는 2박 3일 일정의 제주 여행길에 나섰습니다(둘쨋날 한라산 백록담에서 세찬 칼바람 꿋꿋이 견디며 나라를 위해 기도 한 판 때렸음을 분명히 밝힘). 공항에서 나와 큰 도로로 접어들자 눈이 시리도록 짙은 녹색의 가로수들과 조경수로 심어 놓은 야자수가 이국적인 분위기와 함께 여유로움을 한껏 더했습니다.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넘어가는 <1139번> 도로는 그야말로 <힐링로드>. 위로는 한라산 정상, 아래로는 <1100고지> 중간산의 비경이 절로 감탄을 금치 못하게 했습니다. 곧게 뻗은 삼나무가 끝없이 펼쳐져 있고 그 삼나무 사이로 오가는 시원한 바람, 차창을 내려놓고 해풍에 정화된 제주의 싱싱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켰습니다. 제주는 어디를 가나 드넓게 펼쳐진 초지와 파아란 하늘, 쪽빛 바다가 어우러져 최상의 그림을 만들었습니다. 해가 뜨고 짐에 따라, 날씨가 좋고 나쁨에 따라, 바람이 있고 없고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내며 언제나 색다른 풍광을 연출했습니다. 지금은 한창 샛노란 유채꽃이 제주의 봄을 화사하게 꾸미고 있습니다. <이곳이 제주구나!> 하는 걸 단박에 느끼게 하는 제주 특유의 현무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구멍이 숭숭 뚫린 검은 돌. 바다 어귀, 포구 주변, 동네 골목길, 집집마다 쌓아놓은 돌담, 용암이 흐르다 바다와 만나면서 육각형 기둥모양으로 굳었다는 주상절리, 거대한 퇴적암이 기기묘묘한 형태로 펼쳐져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는 용머리 해안, 외돌개, 섭지코지, 성산 일출봉까지 제주는 온통 돌로 이뤄진 돌섬이었습니다. 


한라산은 그토록 많은 등산객, 탐방객에도 불구하고 아직 때가 덜 묻은 소중한 원시자연의 보고였습니다. 북방한계 식물과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한다는 세계 유일의 명산답게 우리가 오른 성판악 코스만 해도 환상 그 자체였습니다. 울창한 천연 난대림과 빽빽한 비자림,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구상나무 군락지와 무수한 고사목들의 장관이 어느 영화에선가 안젤리나 졸리가 나비를 찾아다니던 캄보디아 따프롬 사원의 스퐁나무 원시림과도 같아 잠시 걸음을 멈추게도 했습니다. 백록을 타고 다니는 신선이 사슴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들른다는 백록담을 오르면서 정말 사슴(노루?)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해발 1950m의 한라산 정상, 남한에서 가장 높은 고도인 백록담에 오르자 몸을 가누기도 힘들 만큼 세찬 바람이 불었습니다. <주여, 모세가 높은 산에 올라 구국의 기도를 드렸듯 이 나라의 긴박한 안보를 위해 기도하오니 북한의 무모한 도발을 막아주옵소서!>


마지막 날 오전에는 기대와 두근거림으로 이중섭 미술관을 찾았습니다. 소박하고 단아했지만 생가와 이중섭 공원, 이중섭 거리까지 잘 조성되어 있었고, 화가가 그곳에서 그린 <파란 게와 어린이>, <섶섬이 보이는 풍경>, <길 떠나는 가족> 등의 유화와 담뱃갑 속의 은지에 그린 은지화 등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강렬한 색감과 선묘 위주의 독특한 조형으로 향토색 짙은 정서를 표현하고 있어서 가장 한국적이면서 또 가장 현대적인 작가로 평가되는 이중섭, 모진 생활고로 그는 그 서귀포에서 일본인 부인과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고 외롭게 살다 만 40세의 젊은 나이로 서울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섬 전체가 자연공원인데 또 무슨 입장료를 내는 공원이냐 할지 모르지만 제주에는 특화된 여러 유료 소공원들이 있습니다. <생각하는 정원>은 만여 점의 정원수와 5백여 점의 분재로 꾸며진 정원인데 생명과 삶에 대한 영감으로 신선한 충격을 받을 만큼 인상적인 곳이었습니다. 이렇듯 제주는 육지 사람들의 지친 심신을 어루만져 주는 진정한 힐링의 섬나라였습니다. 처음에는 닭살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금실부부로 소문난 박정태 한신애 권사님과 함께 떠나 괜히 나 혼자 뻘쭘하지 않을까 염려도 했지만 그건 순전히 기우였습니다. 세심한 배려와 자제(?)로 정말 이번 여행이야 말로 제게 최고의 힐링이 된 것 같아 감사하기 그지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