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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래불사춘>이란 <봄은 왔으되 아직 봄이 아니라>는 의미의 고사성어입니다. 절기상으로는 분명 봄인데도 여전히 봄 같지 않게 추운 날씨가 이어질 때도 쓰이지만, 더 많은 경우 좋은 시절이 왔건만 상황이나 마음이 아직 여의치 않아 꽁꽁 얼어있을 때 은유적으로 쓰는 어구이기도 합니다. 원래 이 말은 당나라 시인 동방규(東方虯)의 <소군원>(昭君怨)이라는 싯귀의 한 구절입니다. 


고대 중국의 4대 미인하면 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를 꼽는데 이들은 다 미모도 미모지만 그들의 삶이 그 시대 시대를 대변할 만큼 파란만장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오래 회자되는 것입니다. 이백과 두보를 비롯해 많은 시인들이 그들을 소재로 시를 썼는데 특히 동방규가 쓴 전한시대의 미녀 왕소군에 관한 시를 보면 이렇습니다.


<오랑캐 땅에는 화초가 없으니 / 봄이 와도 봄이 아니리(春來不似春) / 저절로 허리띠 느슨해지는 것은 / 허리 날씬하게 하려던 것 아니라네>


 이 시에서 동방규가 오랑캐 땅이라고 한 곳은 바로 흉노의 땅이었습니다. 흉노는 유방이 한나라를 세우기 전부터 이미 북방의 강국이었습니다. 결국 전쟁에서 참패한 한나라는 대대로 술과 비단, 쌀 같은 공물과 함께 왕실의 공주까지도 흉노의 군주에게 바쳐야 했는데 11대 황제였던 원제는 공주 대신 궁녀를 속여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때 공주를 대신해 억울하게 오랑캐 땅으로 떠났던 궁녀가 바로 왕소군이었습니다. 그녀의 삶은 흉노의 땅에서도 여전히 기구했습니다. 따라서 허리띠가 느슨해질 만큼 나날이 야위어갔고 봄이 와도 그녀에게는 그게 더 이상 봄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렇습니다. 굳이 왕소군의 <춘래불사춘>이 아니더라도 봄은 언제나 쉽게 오지 않습니다. 동장군의 심술로 때늦은 한파며 폭설도 내리고, 꽃샘추위도 집요하게 오는 봄을 훼방합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조각배가 찬 겨울바다를 표류하고 있습니다. 

촛불집회, 태극기 집회, 특검수사, 탄핵심판, 조기 대선, 혹세무민의 가짜 뉴스,  탄핵심판과 대선 이후 더욱 극명해질 사회분열과 혼란까지 갈수록 태산입니다. 


봄이 봄이아니라는 말이 옛 시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시리고 아픈 현실임을 피부로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입춘도 지나고 우수도 지나고 다음 주일이 벌써 경칩이라지만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찬바람 씽씽 부는 한겨울입니다. 

올해는 봄꽃도 결코 순탄하게 필 것 같지 않은 불길한 예감입니다. 


구약 사무엘하 11:14을 보면 <아침이 되매> 다윗이 우리아를 죽이라는 편지를 써서 그 당사자의 손에 쥐어 전방에 있는 요압 장군에게 보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차지하려는 다윗의 잔학한 암살 모의였습니다. 그야말로 <아침이 왔으되 여전히 아침이 아닌> 어두움의 풍경입니다. 누구나 해가 기울고 어둠이 깔리면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해 모종의 음모에 가담하고 싶은 유혹에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죄의 본능이 꿈틀대는 탓입니다. 


그러나 <봄이 오고, 아침이 오면> 정신을 가다듬고 마치 <마법의 주문>에서 풀려나듯 간밤의 미망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봄과 함께 아침이 오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부디 아직은 꽁꽁 얼어붙은 이 땅에 <춘래불사춘>이 아니라 <춘래진사춘>(春來眞似春), 즉 <봄이 정말 봄 같은> 세상이 하루 속히 오길 진심으로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