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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5일 어린이날은 덴마크의 철학자요 신학자인 <죄렌 키에르케고르>(1813-1855) 탄생 207주기가 되는 날이었고, 또 모레 19일은 그가 늘 잊지 못하고 감사했던 <거듭남>의 날입니다.

<내 마음에 일어나는 무한한 기쁨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한 사도 바울의 환호가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것은 내 마음과 영혼으로부터 솟아나온 완벽한 탄성이었다. ... 나는 내 기쁨에 대해 기뻐하고, 내 기쁨과 더불어 ... 이 기쁨을 기뻐한다.>(1818.5.19 오전 10:30 일기)


저는 1985년 난생 처음 덴마크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기숙사의 덴마크인 친구 베르겐이 방학을 맞아 고향인 코펜하겐을 간다며 3일 동안은 먹여주고 재워줄 수 있다고 해 따라나선 것이지만 실은 키에르케고르에 대한 깊은 관심 때문이었습니다. 신학도라면 누구나 20세기 초중반을 풍미한 <변증법적 신학>, <실존론적 신학>의 원조나 다름없는 키에르케고르에 한 번쯤 매료되게 마련인데 당시 저 역시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의 실존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진리를 향한 치열한 싸움에서 벅찬 감동과 신선한 도전을 받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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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에 도착한 저는 맨 먼저 도시 북서쪽 외곽에 자리한 아시스텐즈 공동묘지부터 찾았습니다. 의외로 그의 무덤은 초라했고 아버지, 형과 함께 누워있었습니다. 누군가 두고 간 시든 꽃다발 하나만 덩그러니 놓였을 뿐 아무런 꾸밈도 장식도 없는 그의 무덤 앞에서 잠시 그의 짧고 고뇌에 찼던 생애를 회상해 본 후 거기서 다시 약 50m 정도 떨어진 <레기네>의 무덤도 찾았습니다. 


코펜하겐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던 키에르케고르가 열 살 연하의 레기네 올센을 만나 사랑에 빠진 것은 그녀의 나이 겨우 열여섯 살 때였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 목사시험에 합격한 키에르케고르는 전격 그녀와 약혼을 합니다. 그러나 곧 파혼을 선언하는데, 이유는 태생적으로 우울하고 병적으로 사색적이었던 그가 한없이 밝고 명랑한 레기네를 도저히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없어서라고 했습니다. 어쨌든 레기네는 키에르케고르가 일생 사랑했던 유일한 여성이었습니다. 키에르케고르의 초라한 무덤과는 대조적으로 그녀의 무덤은 퍽 웅장했고, 고위관료 출신인 남편 요한 프레데릭 슐레겔과 함께 누워있었습니다. 살아서 이루지 못한 사랑이었는데 죽어서도 다른 남자와 나란히 누워 있는 그녀의 무덤이 왠지 조금은 쓸쓸해보였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끝내 독신으로 살며 오직 사색과 집필과 당시 덴마크 국교회와의 투쟁에 모든 것을 다 바쳤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대단히 경건했고, 또 목사요 실존주의의 선구자로서 세계와 보편성을 강조한 헤겔 철학의 이성과 합리성을 비판하며 오히려 인간의 참된 모습은 하나님 앞에 홀로선 <단독자>로서의 실존적 주체성에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여러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키에르케고르가 현대사상과 인류의 근대 정신사에 미친 영향이란 이루말할 수 없이 큽니다. 특히 변증법적 신학에 단초를 제공하며 칼 바르트, 루돌프 불트만, 본회퍼, 에밀 브룬너, 라인홀드 니이버, 폴 틸리히 등에게 깊은 영감을 줬고, 실존주의의 아버지로서 하이데거, 칼 야스퍼스, 장 폴 사르트르, 마르틴 부버, 후설, 비트겐슈타인, 가다머, 자크 데리다, 위르겐 하버마스, 가브리엘 마르셀, 베르자예프 등에 남긴 철학적 유산도 다 헤아리기 힘들 정도입니다. 문학 역시 알베르 까뮈, 헤르만 헤세, 프란츠 카프카, 릴케, 존 업다이크 등이 다 그의 실존주의 사상을 전수받은 자들이며, 심리학 쪽도 빅터 프랭클, 에리히 프롬, 칼 로저스 같은 이들이 모두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주의 세례를 받은 자들입니다. 


1855년 어느 날 산책길에 쓰러져 4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평생 우수, 불안, 절망, 죄의식 속에서 헤어나기 위해 몸부림하며 순수한 절대 신앙을 지키고자 몸부림했던 고독한 단독자, 그는 실존주의와 함께 유명해졌지만 또 실존주의가 비판을 받으면서 함께 도매금으로 처리된 듯해 늘 안타까운 사상가인데, 오늘 청년 주일을 맞아 다시 한 번 그를 인류의 큰 스승으로 이 땅의 모든 젊은이들에게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