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08 20:22

어머니와 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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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하고 따뜻한 목소리와 특유의 선율이 돋보이는 노래자 <지오디>의 제1집 앨범의 타이틀곡이기도 한 <어머님께>라는 곡의 노랫말 중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 야이 야이 야아~ 그렇게 살아가고 / 그렇게 후회하고 눈물도 흘리고 ...>


권 권사님이 늘 그러셨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저는 정말 어머니가 짜장면을 싫어하시는 줄만 알았습니다. 


요즘은 누구나 다 부담 없이 즐기는 국민 음식이고, <짬짜면>이라는 기발한 메뉴도 개발돼 짬뽕과 짜장면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여유도 생겼지만,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짜장면은 참 특별한 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처럼 나이가 좀 든 세대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짜장면에 대한 애잔한 추억 같은 게 있기 마련입니다. 그 때는 어느 집이건 자식들이 통신표에 올 <수>를 받든가 우등상을 타든가, 졸업식 혹은 이삿날이나 돼야 겨우 한 번쯤 먹을 수 있을까 말까 한 별식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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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자란 고향 마을에도 화교 부부가 운영하던 <복춘루>라는 오랜 중국집이 있었습니다. 그 집 주방에서 풍기는 볶고 튀기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늘 온 동네에 진동했고, 우리는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꼴깍꼴깍 군침을 삼키며 언제 저기에 들어가 달콤한 짜장면 곱빼기를 한 번 원 없이 먹어 볼 수 있을까 하며 기약 없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습니다. 

그러다 정말 짜장면을 먹는 날이면 황홀했습니다. 오동통한 면발 위에 잔뜩 부어놓은 짙은 짜장 소스를 면과 잘 비벼 처음 한 젓가락을 입속에 넣었을 때의 그 기막힌 맛이라니...!


그런데 윤기 자르르 흐르는 짜장면과 노오란 단무지를 앞에 두고도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우리와 함께 그 짜장면을 드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맛 좋은 짜장면을 왜 싫어하실까 하며 의아해 했을 뿐 전혀 다른 생각은 해보지 못한 채로 수십 년을 보냈습니다. 


그게 짜장면에 대한 의리나 예의가 아닌 줄은 알면서도 언제부턴가 저는 중국집을 가면 짜장면이냐 짬뽕이냐를 두고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당연히 짜장면이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식성이 짬뽕으로 기울어지는가 싶었는데 요즘은 다시 짜장면으로 돌아왔습니다. 권 권사님 때문입니다. 


전에 <나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신 건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요즘 권 권사님을 모시고 열심히 짜장면 집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권 권사님은 지난 해 7월 아파트 청소를 그만두시면서부터 여러 가지 약을 많이 드십니다. 고혈압, 고지혈, 3차 신경, 골다공증, 우울증, 간염에 약물 부작용으로 피부 발진까지 생겨 독한 피부과 약까지 드시며 거의 입맛을 잃으셨는데,  놀랍게도 짜장면만큼은 여전하십니다. 덕분에 분당과 판교의 짜장면 명가는 거의 다 순례 한 듯합니다. 정자역의 <홍마반점>, 수내동의 <홍콩반점>, 태현공원 앞으로 이전한 <장홍규>, 서현의 <만강홍>, 판교 봇들마을 8단지의 <조박사 짜장>까지 두루 섭렵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예배 후 태재고개의 수타면 <왕손 짜장>을 갔었고, 어버이 주일인 오늘은 예리 예지와 함께 판교 알파리움 2단지의 <하파>를 갈까 합니다. 좀 고급져 한 그릇에 만원을 훌쩍 넘지만 오늘은 꼭 그걸 사드리고 싶습니다. 


예지가 계산하겠죠,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