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1.26 12:55

황당한 금언들

조회 수 3168

월간 <오늘의 청소년>이 2007학년도 대입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격문들입니다. 대부분 진학을 독려하는 격언들이지만 오늘날의 교육현장과 그 실태를 보여주는 섬뜩한 그 무엇이 담겨있음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10분 더 공부하면 남편 얼굴이 바뀐다!> 여학생들의 선호도 1위로 조사된 격문입니다. 출세지상주의를 바탕에 깔고 외모지상주의를 노골적으로 부추기는 극단적인 표현입니다. 여기에는 아예 공부의 목적 따위는 없습니다. 오로지 10분이라도 더 공부하여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그 만큼 더 좋은 조건, 더 잘 생긴 남자를 만날 수 있다는, 그야말로 세속적인 가치관의 극치를 보여주는 무지막지한 경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개같이 공부하여 정승같이 놀자!> 이것은 남학생들이 가장 선호한 격문으로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의 변형입니다. 공부는 돈버는 것과는 달리 그 과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개같이 해서는 안 되며 그 목적도 결코 <정승같이> 놀기 위한 것일 수는 없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출세지상주의적 사고에 그저 아연할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적들의 책장은 넘어가고 있다!> 이 경구도 자기 방 책상 앞이나 자습실, 도서관 칸막이, 연습장 표지 같은 데 가장 많이 각인되는 고전적 금언으로 함께 공부하는 급우가 다 내가 물리쳐야 할 적들입니다. 공동체 정신은 완전히 소멸되고 공부가 한낱 적과의 경쟁도구로 전락하고 만 각박한 현실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지만 성공은 성적순이다!> 이것도 많은 지지를 받은 금언입니다. 겉으로는 행복과 성공의 관계를 구분해 놓고 있지만 속내는 결국 성공해야 행복하다는 가치관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80년대 교육현장의 질곡을 대변했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교육관임에 틀림없습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지만 실패하면 과연 행복하겠느냐는 반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모든 격문이 오로지 비장한 적개심으로 무장해야만 비로소 진학이 가능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날 버렸다’ 생각하지 마라. 세상은 널 가진 적이 없다>와 같은 비정한 표현도 있습니다. 꿈을 안고 자라야 할 청소년들에게 이 보다 더 몰인정한 예단이 있을 수 없습니다.

2007학년도 입시전쟁이 겨우 종전에 이른 지금, 그간 겪었을 수험생 자신과 가족 모두의 고뇌와 노고에 무한한 연민을 보내며 부디 새정부의 교육개혁이 우리의 이 살벌하고 척박한 교육풍토를 새롭게 하는 진정한 쇄신과 혁신이 되기를 진심으로 빌어 봅니다.

T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