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1.21 21:39

목회자의 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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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심정


목회자의 다른 이름은 <죄송>입니다. 벌써 여러 해 전 얘긴데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저희 아이들과 어느 집사님 댁 아이들이 주일 오후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다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내달린 좌석버스에 치인 적이 있습니다. 당시 사고 소식을 들은 저는 반사적으로 누가 다쳤는지부터 물었고 다행히 저희 집 작은 아이라는 얘기에 안도하며 병원을 찾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 만약 저희 아이는 멀쩡하고 집사님 아이가 다쳤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저는 아마 두고두고 죄송해서 고개를 못들었을 겁니다.

목회자는 성도들이 실직을 하고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사업에 어려움을 겪어도 면목이 없어 죄송하고 가정적인 시련을 당하거나 자녀가 시험에 떨어져도 그게 다 자신이 기도하지 않은 탓 같아 죄송하기 그지 없습니다. 장기 불황 속에서 다들 힘들어 하고 교회 살림살이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데 목회자만 생활비를 꼬박꼬박 챙기는 것도 여간 죄송한 노릇이 아닙니다.

목회자에게는 사실 아플 자유나 몸져 누울 권리도 없습니다. 성도들 중 누가 아파도 제 영발이 약해 그런 것 같아 죄송하지만 목회자 자신이 병들어 누워도 한 없이 부끄럽고 죄송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철 감기를 달고 사는 저는 특히 겨울철 코감기, 목감기를 가장 조심하는데 감기에 걸리면 당장 찬송 부르고 설교할 일이 난감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목회자의 가장 큰 부끄러움과 송구함은 설교를 망쳤을 땝니다. 그 때는 정말이지 죄송한 정도가 아니라 달아나고 싶고, 숨고 싶고, 죽고 싶을 만큼 괴롭기까지 합니다. 나름대로 준비를 했음에도 잘 전달이 안 되는 느낌이 들고 조는 사람, 설교 도중에 나가는 사람, 딴전 부리는 사람, 옆사람과 소곤대는 사람, 자꾸만 시계보는 사람, 낙서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올 때 설교자는 등에서 식은 땀이 흐르고 온몸에서 기운이 다 빠져 나가면서 당장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 설교를 들어주며 은혜를 받는 성도들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또 목회자는 교인들이 떠날 때도 극심한 자괴감과 죄송함에 시달립니다. 설교가 마음에 와 닿지 않고 목회자가 영적 갈증을 해소해 주지 못할 뿐 아니라 사랑이 없어서 떠난다고 할 때는 입맛을 잃기도 하고 괴로워 며칠씩 잠을 설치기도 합니다. 연말이 되면 전도도, 아무런 성장도 이루지 못한 그 해 결산이 부끄러워 얼굴을 못들 지경으로 주님께 송구스럽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예의 그 <죄송>이 아니라 <감사>와 <기쁨>, <보람> 같은 게 목회자의 또 다른 이름이 되길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