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22 16:00

10.26 감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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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아닌 선거 계절풍이 거셉니다. 금주 수요일에 있을 10.26 서울시장보궐선거 때문인데 저는 서울시민도 아니고 분당구민이라 투표권을 행사할 일도 없지만 후보 간의 치열한 싸움만은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예쁜 아줌마와 후줄그레한 아저씨 간의 맞대결, 후보의 () 외모가 이번 선거결과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도 자못 궁금합니다. 정치가 사회적 약자였던 여성의 지위를 많이 끌어올린 것도 사실이고, 남성은 여전히 정치사회 분야에서 프리미엄을 얻고 있다는 것도 현실이지만 적어도 법률적으로는 양자 간의 아무런 차별이 없다는 말도 맞습니다. 후보 간의 하나 공통된 키워드는 <아름다움>입니다. 알려진대로 나경원 후보는 <아름다운 의원>(?) 순위 1% 해당되는 여성이고, 박원순 후보는 <아름다운 가게> 창립멤버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번 선거는 <누가 아름다운가> 싸움 같기도 하지만 이는 객적은 뒷담 이상이 아닐 것입니다.


사실 우리네 풍토는 어느 편에 서서 맹목적인 충성을 서약하지 않고는 잠시도 버텨내기가 힘든 양극화로 편제돼 있고, 정치와 권력은 생활 모든 영역에서 무조건적인 신앙고백을 강요하는 촉수를 시도 때도 없이 내밀고 있습니다. 어느 지방 출신이냐,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 어느 인물을 지지하느냐는 등의 심문과 자백이 단숨에 < > < > 가르고, 나보다 뒤에 오면 <꼴통 보수> 나보다 앞서가면 <관념적 진보>, 오직 나와 같이 가야 <합리적 중도> <실용적 진보>라고 우기는 나라. 저는 특정 정당이나 특정 후보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일개 목회자일 뿐입니다만 우리 사회 일각의 그런 횡포와 병증에는 정말이지 이제 신물이 정도입니다. 제대로 정치인이나 단체장이라면 자신의 능력을 선전하며 가르기로 덕을 보기보다는 국민이나 시민들의 변화를 유도하고 그것만이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설득해야 합니다. 국민들의 내면의 잠재력을 불같이 일깨워 그것을 동력으로 새로운 현실을 경험하는 기쁨을 향해 함께 가게 해야 옳습니다


저는 점에서 주님이 제시하신 시민사회의 참된 변화에 관한 해법에 주목합니다. 수천의 굶주린 사람들이 빈들에 널브러져 있고, 어느덧 날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궁리해 봐도 제자들로서는 그들을 먹일 방도가 없는데 주님은 여전히 너희 안에서 길을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 사람이 조금씩만 먹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이가 가진 남루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마리로 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시고 넉넉히 남기셨습니다. 이는 지금 우리가 가진 , 우리의 잠재력만으로도 얼마든지 저문 광야에서 주린 배를 움켜쥔 사람들을 먹이는 일이 가능하다는 뜻이고, 서로 나누려는 마음만 있다면 <새로운 현실, 새로운 서울> 만드는 필요한 재료는 어디든 반드시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제발 이백 데나리온이 있어야 비로소 우리의 허기진 현실을 개선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시장이 바뀌고, 리더가 바뀌어야 비로소 나라가 새로워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마십시오. 막상 때가 보십시오. 이백 데나리온으로 배고픈 오천 명을 먹이기는커녕 다른 엉뚱한 일을 벌일 것입니다. 따라서 사건을 통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궁극적인 교훈은 미력한 존재라고 여기는 시민 사람 사람이 실은 불가능한 현실을 가능의 미래로 바꿀 힘을 가진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 우리의 현재 모습이 비록 초라할지라도 그것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여는 기초가 된다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안에서부터 그런 기대와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번 10.26 역시도 결과와는 상관없이 번의 정치적 이벤트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투표에 동원된 시민들 역시도 한낱 직업적인 정치꾼들의 들러리에 불과할 것이라는 겁니다. , 그래도 하나는 건질 있겠네요. 혹여 내년 대선구도가 <박근혜 vs. 안철수> 간다면 이번 <나경원 vs. 박원순> 판박이가 것이고, 그렇다면 이번 선거결과가 내년 대선 판도를 가늠해 있는 단초가 될거란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