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1.09 21:40

달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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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란트

마 25:14-20

조성노
1992. 9. 총회 사회부 [교회와 사회]

 

어떤 사람이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면서 세 사람의 종에게 각각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의 돈을 맡겼다가 훗날 여행에서 돌아와 냉혹할 정도로 분명하게 시비를 가리며 준엄한 결산을 했다는 이 달란트 비유는 그간 이래저래 많은 수난을 당해 왔다. 누구 보다도 이른바 ‘분배균등’을 사회정의의 기본으로 믿는 사회주의자들에게 맹렬한 비판을 받았다. 그들은 첫째, 분배가 불균등했다는 것과 둘째, 적게 받은 자의 그 한 달란트마저 빼앗아 많이 맡은 자에게 줬다는 것은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악을 조장하는 처사라고 주장하면서 이것은 바로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핵심은 인간 사회의 경제질서를 교훈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나님 나라의 비유’(25:1)임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한편 또 어떤 이들은 주인이 세 사람에게 각각 힘에 맞도록 차등을 두어 달란트를 맡겼다는 사실 속에서 그렇다면 여기에는 벌써 인간차별이 전제된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비유에는 각자의 능력을 저울질하여 그것으로 곧 인간의 존엄성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측면이 있다. 이는 5달란트 남긴 자나 2달란트 남긴 자에게 똑같은 칭찬과 축복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따라서 우리는 아무런 편견 없이 이 비유의 내용을 살펴봐야 당초 예수께서 의도하셨던 그 본래적인 의미에 접근 가능하리라 본다.

이를테면 주인의 달란트를 맡고 있는 동안이 바로 인간의 현실적인 삶을 의미하고, 주인이 돌아오는 날이 곧 그간 살아온 모든 삶의 진상이 폭로되는 날이다. 사실 심판이라는 말은 현대인들에게 그다지 공명되지 않는다. 그 언어 속에 채색된 신화적 표상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리 낙관적인 사람이라 해도 역사가 심판했다거나, 지구의 생태학적 종말을 고하는 학자들의 예견을 비웃을 사람은 없다. 물론 성서가 말하는 종말이란 그저 모든 것이 끝장나고 마는 단순한 종국이 아니라 숨겨졌던 진상이 폭로되고 그간의 삶의 내용이 철저하게 비판되는 심판의 날이다.그 때는 이렇게 저렇게 하려했다는 설명이나 변명 따위가 통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달란트 비유는 심판의 날을 앞둔 존재로서의 인간이 주인없는 동안을 과연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 것인가에 관심을 집중한다. 그러므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던 자의 삶이 신랄하게 고발되는데 무엇보다도 한 달란트 받은 자의 사람됨은 그의 자기 변호에서 잘 드러난다. “주인이여, 나는 당신이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데서 모으는 무서운 분임을 알고 두려워서 그 달란트를 가지고 가서 땅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 그 돈이 그대로 있습니다.”

이 사람은 우선 자기 주인을 터무니없이 잘못 알고 있었다.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데서 모으는 자’라니? 이것은 공산주의자가 부르조아를 비판하는 말과 너무도 흡사하다. 자기는 노력하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서 남의 노동력을 착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비유 가운데는 어디에도 주인이 그의 종들을 착취했다는 흔적은 없다. 오히려 각 사람의 능력만큼 심고, 뿌린 정직한 사람이다.

결국 한 달란트 받은 자의 자기변명은 주인의 지적대로 자신의 약함과 게으름을 합리화하려는 어설픈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신으로부터 그만의 고유한 달란트를 받았다. 그럼에도 흔히 자기 달란트에 대해 무책임한 것은 무엇보다도 주인에 대한 이해가 몰지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멋대로 엉뚱한 결론을 내려놓고 안심하고 있다. 그러나 주인에 대한 이해가 바른 자는 결코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지 않는다. 그분의 뜻을 좇아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을 위한 사회봉사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본문 가운데서 5달란트 받은 자가 5달란트를, 2달란트 받은 자가 굳이 2달란트를 남겼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게 바로 받은 만큼의 자기 책임에 충실했다는 뜻이다. 이에 반해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둔 자가 하필이면 왜 한 달란트 받은 자인가. 이는 우리의 정곡을 찌른 것이다. 흔히 우리는 한 달란트 쯤이야 하는 생각, 사소한 일에 신경 쓸 사람이 아니라는 오만, 큰 과제에 불탈 사람이라는 허영에 바져 현재에 주어진 한 달란트를 우습게 여긴다.

그러나 본문의 주인은 오히려 작은 일에 충성한 자에게 큰 일을 맡기겠다고 한다. 이것은 작은 일에 신실하지 못한 사람은 본인의 장담과는 상관없이 큰 일이 와도 감당하지 못하며 작은 일에 대해 이런저런 핑계가 많은 사람은 큰 일에 대해서도 여전히 이런저런 구실이 있어 참여할 기회를 놓치고 만다는 뜻이다. 자기에게는 주어진 달란트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다. 우리 모두는 그 나름대로의 달란트를 받았고 그런 의미에서 모두가 하나님의 청지기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도통 청지기 의식, 받은 달란트에 대한 책임의식이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심지어는 남을 위해 투자하느니 차라리 땅에 묻어두자는 생각이 지배적이고, 아니면 제대로 걷든지 말든지 오직 자기에게 다 쏟아 붓겠다는 게 상식이다. 그래서 세계는 점점 삭막해져가고,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간격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아득해 졌으며, 모두가 이기주의의 화신이 되어 오로지 제 것에만 집착하고 있다. 이는 모두가 받은 달란트에 대한 책임의식이 상실된 데서 오는 혼란이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새삼 달란트 비유를 상기하면서 이웃사랑의 구체적 실천인 사회봉사의 당위성 문제를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