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03 10:38

가을비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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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는 길목에 추적추적 비가 내립니다. 

반짝했던 지난여름 장마와는 달리 길게 이어지는 가을장마로 농가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에 가을장마까지...  추석을 앞둔 서민들의 삶도 더 팍팍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이 세상에서 평평한 길이란 없습니다. 

울퉁불퉁하고 경사진 곳도 있고 심하게 패인 곳도 있기 마련입니다. 

평소에는 잘 모르지만 요즘처럼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그 모든 굴곡들이 금방 다 드러납니다. 그래서 옹기종기 모인 물방울들이 고여 작은 거울처럼 하늘을 떠가는 구름을 비추기도 하고, 어디가 높고 어디가 낮은지도 확인시켜주고, 또 옴푹한 웅덩이가 어디인지도 쉽게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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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도 딱 그런 것 같습니다. 

해 뜨는 날이 있고, 비 오는 우울한 날도 있고, 장마처럼 마음의 습도가 오래 지속되는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마다 마음에 패인 그 상처에 빗물이 고이고, 거기에 언뜻언뜻 이루지 못한 꿈, 누리지 못한 사랑, 공포, 외로움, 콤플렉스 같은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다 자기만 그렇게 아프고 유난히 외로운 줄 압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웃고 즐거워하고 행복해 하는데 나만 언제나 외톨이인 것 같고 고독하고 아픈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때로는 병적으로 남의 감정을 확인하려 듭니다. 언제 슬픈지, 왜 기쁜지, 근심은 없는지, 뭣 때문에 늘 웃는지, 행복한 이유가 뭔지를 상대가 질리도록 집요하게 추궁하기도 합니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이 세상에서 슬프지 않고, 걱정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 거리의 수많은 사람들, 모두가 시침을 떼고, 마스크로 가려서 그렇지 다 각자의 외로움과 각자의 슬픔, 각자의 서러움과 허무감을 안고 살아갑니다. 

세상에는 나만 특별대우를 받을 일도 없지만, 또 나만 터무니없이 황당한 일을 당하며 사는 법도 없습니다. 알고 보면 우리는 다 고만고만한 아픔을 늘 공평하게 나눠 당하며 삽니다. 

 

심지어 우리는 나이조차도 공짜로 먹지 않습니다. 

반드시 나잇값을 치러야 합니다. 누구나 먹는 나이라고 시간만 가면 그냥 한 살 두 살 더해지는 게 아니라 음식을 먹고 값을 지불하듯 꼭 그렇게 대가를 치뤄야 합니다. 

갈수록 직장에서 사회에서 배제 당하는 거며, 병원을 자주 드나드는 일이며, 가정에서 점점 더 천덕꾸러기가 되어가는 일 따위가 다 이를테면 내가 피할 수 없이 지불해야 하는 호된 나잇값입니다. 

 

요즘 저는 그렇게 나이가 들며 좀 더 예민해진 감정 탓인지 시시각각 전해지는 우리 사회의 여러 현상들이나 보도들이 참 불편하고 때로는 꽤나 괴롭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분노와 아픔과 상처를 주고도 아무런 반성이나 성찰도 없이 태연자약하거나 되래 적반하장의 뻔뻔함을 보이는 사람들이 몹시 마음을 서글프게 하고, 그래도 상식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다수 국민들은 말도 안 되는 그런 상황을 접하며 이중 삼중의 스트레스를 받는 현실이 참 속상하고 안타깝습니다. 

정말 이 대한민국에서의 행복이란 요원한 것일까요?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토록 철면피해졌을까요?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따위는 진즉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미 권력이며 부며 명예를 잔뜩 움켜쥐고도 더 갖지 못해 안달하는 기득권자들, 행복이란 나 홀로 느끼는 쾌감이 아니라 더불어 누릴 때 다가오는 보람과 만족감이 아닐까요? 

과연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는 지금 과연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각자가 신앙 양심과 가장 보편적인 상식의 소리에 다시 한 번 귀를 기울여 보면 좋겠습니다. 

 

매년 가을이 되면 저는 부끄럽고 쓸쓸해집니다. 

서늘한 새벽 공기가 저를 부끄럽게 하고, 아득히 높아진 가을 하늘이 저를 더욱 쓸쓸하게 합니다. 

<희랍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가잔차키스>의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나는 바라는 게 없다. 나는 두려운 게 없다. 나는 자유인이다.>

올 가을의 기도는 꼭 무엇을 바라고 구하기보다 내 가난한 영혼에 대한 깊은 감사가 우선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자유인의 기도란 진정으로 그런 감사의  기도가 아닐까요? 

 

이번 비가 그치고 나면 공기도 햇볕도 풀벌레 소리도 한결 더 가을스러워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