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27 13:56

아프간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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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이자 광복절 76주기였던 지난 15일, 저 유라시아 한복판 아프간에서는 이슬람 무장단체인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아프가니스탄 대탈환>을 선언했습니다.

미군이 철수를 시작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벌어진 일입니다. 

나흘 전까지만 해도(11일) 미 행정부는 <어쩌면 90일 이내 카불이 함락될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놨는데, 그런 미국을 비웃듯 탈레반의 카불 진격은 상상을 초월하는 속전속결이었습니다. 

 

지난 20년간 미군이 조직하고 훈련시켰다는 정부군 30만이 불과 7만의 탈레반 앞에서 총 한 번 쏴보지도 못한 채 투항하거나 아예 총, 장비를 다 버리고 달아났습니다. 

탈레반은 수도 카불과 텅 빈 대통령궁에 무혈 입성했고, 알자지라 방송 카메라 앞에서 미군이 버리고 간 아파치 헬기에 자신들의 흰 깃발을 꽂고 승리를 만끽했습니다.

 

지난 2020년 2월 29일 트럼프 대통령이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2021년 5월까지 철군을 약속했는데, 2021년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며 9월로 일정이 조정된 가운데 최근에는 미군의 철수가 거의 야반도주처럼 이뤄졌습니다. 

 

 약 1천억 원을 들여 건설한 <바그람> 미군 기지는 우리나라 평택에 비견되는 아프간 최대의 기지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7월초 미군이 거기서 하룻밤 사이에 쥐도 새도 모르게 철수해버렸습니다. 수천 대의 차량과 수백 대의 장갑차, 아파치 헬기, 350만 점의 주요 군수 물품들을 고스란히 다 두고 미군과 그의 가족 10만 명만 몰래 바그람을 빠져나갔는데 그 사실이 확인되면서 정부군의 사기는 완전히 꺾이고, 탈레반은 오히려 기가 살아 더욱 전의를 불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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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은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파키스탄 등에 둘러싸인 나라로 유라시아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어 군사적, 전략적 요충지로 손꼽히지만 또 그로 인해 지난 1천 년 이상 페르시아, 그리스, 몽고 등의 잦은 침략과 정복을 당했고, 근현대에 들어와서도 19세기에는 영국에, 20세기에는 소련의 침략을 받습니다. 그리고 2001년 발생한 9.11 이후에는 테러 배후인 알 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을 숨겨줬다는 이유로 미국의 공습을 받으며 미국과의 전쟁을 벌이는데 미국은 지난 20년 동안 군대를 주둔시키고 약 100조 원 가량의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 부으며 아프간 정부군을 지원하는 한편 탈레반과의 전쟁을 벌이다 결국은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채 도망치듯 철군을 감행하여 나라와 정권을 통째 탈레반에게 내주고 말았습니다.

 

아프간 사태 직후 국내 주요 일간지들이 다투어 뽑은 헤드라인과 사설 제목은 <아프간 다음은 한국?> 혹은 <아프간 다음은 대만과 한국> 등이었습니다. 미국의 CNN과 영국의 BBC, 가디언도 <아프간 다음은 한국이 미군 철군 대상국이 될 것>이라 점쳤습니다. 특히 가디언은 그날이 생각보다 빨리 올 것이라며 이유를 <한국 정부의 고위관료들과 여당 중심의 국회의원들이 조직적으로 철군을 주장하고 있고, 서명 운동까지 벌이며 바이든 행정부와 미 의회에 확실한 철군 명분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미군의 철군 역사는 <아프간 다음이 한국>이 아니라 실은 <아프간, 베트남 이전에 이미 한국>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6.25 전쟁도 사실 미국의 철군이 부른 동족상잔의 비극이었습니다. 

 1945-1948년까지를 우리는 미군정기라고 부릅니다. 

 해방과 함께 미군이 38 이남을 통치하던 시대여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1948년 8월 15일 남한이 대한민국을 건국하자 이듬해 6월말 남한에 주둔해온 미군이 500명의 군사 고문단만을 남긴 채 철수하며 10만 가량의 남한 군대를 소총 하나씩만 든 자위대 수준으로 만들어 놓고 떠났습니다. 반면 북한에서는 1948년 9월 9일 조선인민공화국이 탄생하자 소련이 북한의 인민군대를 완벽하게 무장시켰습니다. 그리고 미군이 남한에서 철수하자 곧 김일성이 요구해온 남침을 허락합니다. 

 

1950년 6월 25일 38선을 넘은 인민군은 남침 사흘만에 서울을 점령합니다. 그리고 미국과 이승만 정부에 참여하고 협조한 <반동분자>들을 색출해 공개처형하고, 또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공산주의자들을 석방하여 치안유지 요원으로 붉은 완장을 채워주는데 그들이 서울 뿐 아니라 부산과 낙동강 유역을 제외한 인민군 점령지역을 뒤지고 다니며 친미 친정부 인사들을 체포해 총으로, 죽창으로 무참하게 살해했습니다. 

 

지금 아프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이 남의 얘기일까요? 

우리나라에서 9000km 이상 떨어진 어느 먼 나라의 아픔일까요?

카불 공항에서 이륙하는 비행기에 매달려 날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경악할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아프간 사람들의 그 목숨을 건 엑소더스를 보며 저는 저게 절대 남의 나라 일만이 아니라는 생각에 소름이 다 돋았습니다. 

2021년 아프간에서, 1973년 베트남에서, 1949년 남한에서 다 버리고 도망치듯 철수한 미군이 또 어느 날 그렇게 이 대한민국에서 철군하지 않을 거란 보장이 있을까요? 

 

비교적 중립적인 외신들은 이구동성 <아프간 다음은 한국>이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