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20 13:41

겸허한 모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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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는 여전히 <코로나>입니다.

어디서든 누구든 <코로나>로 시작합니다.

<코로나 조심하세요!>

<어제는 확진자가 몇 명이나 나왔대요?>

<그거야 통계 놀음이지 ... 많이 검사하면 많이 나오는 거고, 적게 하면 적게 나오는 거고... 그래서 ‘정치 방역’이라고 하잖아!>

<허허, 쩝...>

 

난폭한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접수했듯 지금은 거의 코로나 천하입니다. 

전문가들이 예고해온 대로 <위드 코로나>(with corona)가 현실이 된 겁니다. 

변이에 변이를 거듭하며 아예 우리 곁에 눌러앉겠다는데, 국가도 방역당국도 백신으로도 감당이 안 되는데 어쩌겠습니까?

 

 코로나의 공세와 그로 인한 집단 히스테리, 분노조절 장애, 코로나 블루, 레드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폭발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갈수록 팽배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종말론적 불안입니다. 과학자들이 전파력, 치명률에 있어 최악이 될 변이를 <심판의 날>(Doomsday) 바이러스라고 명명한 것도 지금 전 세계가 그만큼 종말론적 위기감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여름이 아무리 오만하게 자신의 뜨거움을 과시해도 우주의 궤도를 달리는 시간의 질서 앞에서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듯이 현재의 이 카오스 상황도 반드시 주님이 통제하시고 평정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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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23일)이 절기상 여름의 마지막을 뜻하는 <처서>입니다. 

올 여름은 유난히 덥고 길었습니다. 섭씨 30도를 훌쩍 넘고, 40도에 육박하는 체감 온도에 한낮에는 밖을 나서기가 두려울 정도였습니다. 한 때는 코로나 재난문자보다 폭염 경보와 외출 자제를 당부하는 문자가 더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입추>가 지나면서부터 아침저녁 선선한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내일이 벌써 <처서>라고 합니다. 요 며칠 전에는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어찌나 하얗던지 두 손가락으로 솜사탕처럼 찢어 먹고 싶었습니다. 

 

 비가 내립니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그치면 우리는 또 인생의 어디쯤을 걷고 있을까요? 

늦여름을 지나 풀벌레 우는 초가을 속에 있겠죠. 

입추 말복을 보내면 처서 백로가 오듯, 올 한 해도 우리는 그렇게 나이가 들고, 또 숲의 나무들과 아이들은 자라고, 열매와 씨들은 단단히 여물어 갈 것입니다. 

 

한국 시문학사에서 가장 지성적이고 고독했던 시인으로 꼽히는 김현승, 장로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한국 기독교 문학의 새 지평을 열기도 한 그는 릴케를 닮은 시 <가을의 기도>에서 이렇게 읊었습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

 

그가 말한 <겸허한 모국어>란 곧 <기도의 언어>를 가리킵니다. 

지금 마스크에 갇힌 우리의 영혼이 이토록 메마른 것은 그동안 코로나를 핑계로 기도하지 않은 탓입니다. 

바야흐로 기도의 계절이 왔습니다. 

기도란 시든 내 영혼이 주님께 접속하여 그분의 생기를 받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엄숙한 생명 예술입니다. 

 

갓 볶아낸 커피 향 같은 가을의 초입,

기도의 언어인 <겸허한 모국어>로 당신의 텅빈 영혼을 채우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