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2 09:55

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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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천지에 봄꽃들이 활짝 만개했는데 보선을 앞둔 정치권에는 여야가 쏟아내는 포퓰리즘이 만발했습니다. 배 밑창을 뜯어내 선실을 데워주는 꼴인 포퓰리즘이 이 시대에도 여전히 먹히는 이유는 그걸 반기는 사람들이 반대하는 사람들보다 많기 때문입니다. 

 

배가 기운다는데도 선거판에서는 언제나 포퓰리스트가 이깁니다. 

어느 사회나 덜 가진 자가 더 가진 자보다 많기 때문이고, 더구나 우리는 아직도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는 정서가 강할 뿐 아니라 정치권도 여전히 <먹은 놈은 찍는다>는 등식을 절대 신봉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주 드문 경우지만 국민들이 포퓰리즘을 추방한 예도 없지는 않습니다. 

몇 년 전 스위스가 기본소득 월 2,500 프랑(한화 3백만원) 지급 안을 놓고 투표하여 전국민 76.9%의 반대로 부결시켰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다음 세대에 짐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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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populism)이란 <대중,인민,민중>이라는 뜻의 라틴어 <포풀루스>(Populus)에서 온 말로 <대중주의> 혹은 <인기영합주의> 쯤으로 번역될 수 있지만 현실 속에서는 주로 선거 때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며 돈을 뿌리는 매표행위를 가리킵니다.

 

포퓰리즘은 옳고 그른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다수 대중들이 무엇을 원하는가 만을 추구합니다. 무조건 인기를 얻는 데만 그 목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도덕성이나 가치 따위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중가요처럼 그저 인기 차트 1위만 달성하면 그뿐입니다. 

 

위기 때 돈을 푸른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방식이 문제입니다. 선진국들은 재정을 풀어 생산 부문에 힘이 실리게 하는 반면 지금 우리는 공중에 돈을 뿌리듯 살포해 그냥 소비해 버리게 합니다. 그래서 포퓰리즘은 <독이 든 꿀물>입니다. 사이다나 아이스크림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사이다 좋아하다가는 이빨이 다 썩고 비만으로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미 공립학교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이다와 콜라 같은 탄산음료를 퇴출했습니다. 우리는 톡 쏘고 짜릿한 사이다가 아니라 특별한 맛도 톡 쏘지도 않는 맹물을 마시고 삽니다. 

시원하고 달콤하고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을 먹고 살지 않고 특별한 맛도 달콤하지도 않은 밥을 먹고 삽니다. 

 

난세에는 포퓰리즘 만큼 위험한 것도 없습니다. 정치인들이 대중들의 지지와 표를 얻기 위해 나라가 망하건 말건 무차별로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해 국민들이 거기에 중독되면 다 폐인이 됩니다. 부모 세대는 살지만 자녀 세대는 죽습니다. 

그게 바로 포퓰리즘의 비극이고 종말입니다. 

 

놀랍게도 주님 역시 포퓰리즘의 희생양이셨습니다. 빌라도가 주님을 송사하는 무리들을 향해 <나는 그에게서 아무런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요18:38)며 몇 차례나 무죄 선언을 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정치 생명을 위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요19:15)는 군중들의 요구에 굴복하잖습니까?

 

그렇다면 포퓰리즘은 누가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세계 제1위의 산유국임에도 국민 다수가 거리의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저 베네수엘라처럼 추락할 것인가, 스위스처럼 압도적인 거부로 포퓰리즘을 극복하고 비상할 것인가? 

 

그것은 오롯이 권력의 심판자인 유권자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