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3 08:45

신자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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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기독교 신자인가? 내가 신자가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일까? 아니면 우연이 어쩌다 필연이 된 것일까?>

전에 신학교에서 신입생들에게 기초신학을 가르치며 자주 던졌던 질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왜 기독교 신자인가? 왜 신자로 남으려 하는가? 요즘 같은 종교 다원주의 시대에 왜 굳이 기독교 신앙이어야 하는가?> 대부분의 학생들은 황당해하고, 신학교 선생이란 사람이 무슨 그런 질문을 하느냐는 식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아예 노골적으로 항의하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사는  신자들에게도 저는 같은 물음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신자라고 특별히 코로나 바이러스가 피해가는 것도 아니고,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하다는 보장은커녕 도리어 교회에서, 선교단체에서 더 많은 감염자가 쏟아져 사회로부터 <코로나19> 온상이라는 비난까지 듣는 마당에 어째서 여전히 신자로 살아가느냐는 것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던진 정인이 사건도 그렇습니다. 

그 양부모가 대표적인 기독교 대학이라는 한동대 출신이고, 또 목회자의 아들 딸이라고 하잖습니까? 16개월의 짧은 생애, 얼마나 아팠을까요. 얼마나 고독하고 슬펐을까요. 결국 이번 정인이 사건은 회칠한 무덤처럼 위선과 외식, 독선과 탐욕에 쩔은 우리 한국 교회의 비극이자 신자들인 우리 모두의 죄악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저는 정인이 사건을 다룬 <그것이 알고 싶다> 1244회를 보고나서 충격에 그 날은 아예 밤잠을 이루지 못했고, 계속 몸과 마음이 아파 며칠을 끙끙대며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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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모두가 신앙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어 고난에 대한 해석이 잘 안 되고, 고난에 대한 해석이 안 되기에 누구나 신앙의 정체성에 큰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참된 신앙은 나로 하여금 복의 기준을 바꾸게 하고, 또 세상을 보는 눈도 바꿔 새로운 우주관을 갖게 합니다. 신앙은 때로 내 자신을 벼랑 끝에 세우기도 하고, 그 벼랑 끝에서 영원을 바라보며 용감하게 담대하게 살게도 합니다. 그래서 신자는 영원히 살 것처럼 오늘을 살고, 오늘이 마치 종말이듯 최선을 다해 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자는 오늘과 영원을 동시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신자로 산다는 것은 하나의 큰 도전이자 은총이며, 결단이자 비장한 고백입니다. 벼랑 끝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넘실대는 홍해와 요단강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모험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이 혼란스런 코로나 와중에도 여전히 의연하게 살아가는 신자들의 모습입니다. 신자답게 사는 신자들이 결국은 교회다운 교회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자로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고민이야 말로 이 시대 믿는 자들의 가장 심각하고 진지한 실존적 과제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고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8-10). 

 

신자의 존재, 신자의 삶, 신자의 자의식을 이보다 더 명쾌하게 선언한 말씀도 없을 것 같습니다. 

<코로나19>로, 한파로 혹독한 겨울이지만 어느 새 봄이 오는 소리를 듣습니다. 

 

부디 이 어려운 시절이 겨울과 함께 빨리 지나가기를 고대하며, 위의 바울의 진술이 이 시대 신자들의 진짐어린 신앙고백이 되길 간절히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