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0 23:24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조회 수 104

그러잖아도 11월 하순에 가을이 깊어가고 찬비가 내리고 스산한 바람이 불어 가슴을 후비는데 요즘 부쩍 주변에서 <외롭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저는 권 권사님에게서 외로움을 참 많이 느낍니다. 그럼에도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다보니 안타까움과 쓸쓸함이 더 사무칩니다.  


정호승 시인은 <수선화에게>라는 시에서 외로움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울지 마라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 ...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 ... 가끔은 하나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은 마을로 내려온다 ...>


<살아간다는 것은 곧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라>는 시인의 말이 참 와 닿습니다. 

한 송이 수선화의 외로움, 이름 없는 새들의 외로움까지 이해하고 하나님의 외로움마저도 헤아릴 수 있다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외로움도 능히 이길 수 있지 않을까요? 


가끔 하나님도 눈물을 흘리신다는 시인의 아름다운 문학적 감성과 무심한 듯 하면서도 따뜻한 목소리가 이 가을 우리의 헛헛한 가슴에 진심어린 위안이 되길 빌어봅니다. 





tee-1756497_1280.jpg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이 처음 빛을 창조하시고 그게 너무 아름다워 스스로 감동하시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4). 그럼에도 문제는 그 아름다움을 함께 나눌 대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홀로 즐기시기에는 너무도 아름답고 장엄한 그 광채를 꼭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으셨습니다. 뭔가를 서로 나누고 싶은 관계란 곧 사랑일 수밖에 없으며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우리 인간이 지음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외로움을 외면하고 맙니다. 


빛의 아름다움보다 어두움의 유혹에 빠진 탓입니다. 또 그런 인간의 모습에서 하나님은 더욱 외로우셨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바친 꽃다발이 그의 면전에서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듯한 비애를 느끼신 겁니다. 


그런데 사람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매번 <보시기에 좋았더라>며 감탄하신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신 후에는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가 혼자 사는 게 좋지 않게 보였다>(창 2:18)며 <내가 그를 위하여 짝을 지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렇듯 사람도 원래는 혼자였습니다. 하와와 더불어 살기 전에는 아담도 외로운 존재였습니다. 


심지어 부부라는 이름으로 남녀가 함께 지낼 때조차 그 결정적인 순간에는 언제나 각각이고 홀로였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함께 유혹 받지 않고 하와가 홀로 당했습니다. 하나님도 범죄한 두 사람을 각각 만나사 그 둘의 운명을 다르게 판결하심으로써 그들의 갈 길이 서로 같지 않음을 선언하셨습니다.


이처럼 창세기는 남녀가 한 몸처럼 보이나 어쩔 수 없이 둘이고, 서로 같은 공간에서 부부로 산다고는 하나 결국은 각기 홀로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을 뿐입니다. 


범죄한 후 그들이 부끄러워 자신을 감추었다는 대목도 인간의 원초적인 외로움을 말합니다. 자신을 가렸다는 것은 곧 남에게 자신을 공개하기 싫다는 뜻 아닙니까? 따라서 인간은 자신 만의 깊은 비밀을 간직한 채 타인의 관여를 거부하고 홀로 그 운명 앞에 섭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외로운 자신만의 골방에서 자주 하나님의 음성과 저 험한 밤바다에서 외로이 풍랑과 싸우는 제자들의 비명을 들으셨습니다. 그 고독 속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함께 만나신 겁니다. 


<코로나>로 시작해 <코로나>로 한 해가 저무는 이 연말, 부디 외로움 속에서도 주님처럼 하나님의 위로를 만나시고 , 또 이웃들의 탄식도 함께 듣는 따뜻한 성도들이 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