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3 21:05

땡스기빙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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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은 투명하고 파아란 하늘은 눈이 시린데 기온은 벌써 많이 떨어졌습니다. 

요즘 새벽 공기는 차갑기까지 합니다. 

이 혼란스런 와중에도 세월의 강은 이렇듯 무심히 흐르는데 우리는 지금 그 물결에 떠밀려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 지구촌 모든 이들의 삶이 갈수록 더 팍팍해지고 시름은 깊어 가는데 올해도 우리가 과연 감사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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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주님이 어느 작은 촌락에서 열 명의 나병환자를 고쳐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멀리서서 소리를 높여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눅 17:13)하며 호소하자 주님이 <제사장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셨는데, 가던 중에 그들의 그 몹쓸 병이 모두 나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이 시험거리였습니다. <꼭 예수님 때문에 나았을까? 우연은 아닐까?> <나을 때가 돼서 나았겠지... 운이 좋았던 게지...> <지금은 제사장에게 가서 확인 받는 일이 더 중요해!> 조금 전까지는 그토록 절절했던 마음들이 어느 새 다 사라지고 지금은 오직 제사장에게 가서 공인을 받아 빨리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더 중요해진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사마리아 출신 환자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돌아와 <주님 발아래 엎드려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흔히 열의 하나만이 감사한다는 이 아픈 지적, 더 놀라운 것은 주님이 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19절). 그러니까 그냥 제 갈 길을 간 아홉은 육신의 병은 고쳤을지언정 영혼의 구원은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이고, 돌아와 주님께 감사한 사마리아 사람은 육신뿐 아니라 영혼까지 전인적 구원을 얻어 돌아갔다는 얘깁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① 주님이 <감사>의 행위와 <믿음>을 동일시 하셨다는 겁니다. 가다 되돌아와 감사한 것뿐인데 주님이 그를 향해 <네 믿음이 ...>라고 하셨습니다. 

② <감사>가 곧 진정한 <구원>을 보장한다는 것입니다. <...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이는 주님이 <감사와 믿음>, <감사와 구원>의 관계를 밝히신 소중한 말씀입니다.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입니다. 오리지널 <땡스기빙>인 구약의 초막절은 원래 가을걷이를 끝낸 후 한 주간 동안 길게 이어진 감사의 축제였습니다. <너희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신 16:13). 그렇게 긴 시간 초막절을 지킨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오래도록 기억하며 생활 속에 깊이 각인하라는 뜻이었습니다. 또 <절기를 지킬 때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성 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들과 함께 즐거워하라>(14절)고 했습니다. 이는 이웃과 함께 지키며 그 감사의 마음을 서로 나누라는 뜻입니다. 

불안하고 고단한 코로나 상황에서도 결코 감사에 인색하지 맙시다. 


<감사>가 우리의 상한 심령을 힐링하고, 이 어두운 시대를 밝히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별의 이름>(김기림)입니다.

해피 땡스기빙 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