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3 21:05

내 주는 강한 성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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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는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직접 작사 작곡한 <코랄>(찬송)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로마 가톨릭의 가르침과 면죄부 판매에 대한 95개 조항의 비판문을 게시하며 개혁의 기치를 든 그는 결국 1521년 10월 교황 레오(Leo) 10세에 의해 파문되고 출교 조치를 당합니다. 


그러나 독일의 영주들은 루터에게 소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로 하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가 주재하는 보름스(Worms) 의회에 출석할 것을 통보합니다. 친구들과 주위 사람들은 자칫 체포될 수도 있다며 만류했으나 루터는 그 소환에 응하기로 하고 의회 일정 하루 전인 4월 16일 보름스에 도착합니다. 이제 내일이면 의회에 나가 카를 5세 황제와 트리에르 대주교 앞에서 심문을 받아야 합니다. 


그날 밤 루터는 깊은 고뇌에 빠져 몸부림하듯 기도했습니다. 고독했고, 두려웠고, 자꾸만 마음이 약해지며 흔들려 신음하듯 주님을 불렀습니다.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 문득 그의 뇌리에 시편 46편 말씀이 떠오르며 마음 저 깊은 곳으로부터 걷잡을 수 없는 뜨거움과 함께 담력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1절)


이 말씀이 계시처럼 루터에게 큰 위로와 확신으로 다가 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영감을 얻어 가사를 쓰고 곡을 붙여 만든 <코랄>(Chorale)이 바로 종교개혁의 주제가가 된 <내 주는 강한 성이요>(Ein feste Burg ist unser Gott)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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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는 밤새도록 이 찬송을 부르며 기도한 후 <보름스 의회 지붕의 기왓장이 다 마귀라 해도 나는 그곳에 나가 당당히 진리를 밝히리라>며 의회 청문회장으로 나아갔고, 거기서 황제가 <그대는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반한 모든 주장과 사상을 철회할 용의가 있는가?>하고 물었을 때 이렇게 답합니다. <나는 성서의 증거와 이성에 비추어 교황과 가톨릭의 가르침, 권위 등을 결코 인정할 수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저의 신앙 양심은 지금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철회할 수 없고, 제 신앙 양심에 반한 그 어떤 행동도 취할 수 없습니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 아멘!>


따라서 <내 주는 강한 성이요>는 루터의 종교개혁의 주제가이자 500년 개신교사의 첫 <찬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루터 이전의 가톨릭 교회는 찬송을 오직 성가대와 사제들만이 불렀고, 일반 신도들은 단지 그들의 라틴어 다성 음악을 수동적으로 듣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루터는 종교개혁과 함께 회중이 예배 시 함께 부를 수 있는 단순하고도 알기 쉬운 가사의 <코랄>이라는 형식을 도입해 대중화 했을 뿐 아니라 라틴어가 아닌 독일어, 모국어로 가사를 쓰고 부르게 하여 언제 어디서나 쉽게 제창할 수 있게 했습니다. 사제 중심, 찬양대 중심, 라틴어 가사의 다성 음악을 화성이 붙지 않고 반주 없이도 제창할 수 있는 단성 음악으로 보급한 것입니다. 1524년에는 자신이 직접 창작한 37곡의 코랄을 편집한 <기독교 가곡집>(Ethlich Christliche Lieder)을 출간했는데, 이게 이를테면  개신교 최초의 <찬송가>였습니다. 루터는 예배자 모두가 참여하여 누구나 쉽게 부르며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어야 그게 진정한 예배음악이라고 믿었습니다. 


1546년 2월 63세를 일기로 주님 품에 안긴 루터의 유해를 운구하며 온 독일 국민들이 함께 눈물로 불렀던 조가도 바로 이 찬송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