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6 21:45

선물 같은 가을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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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이른 새벽에도 하늘이 새파랗습니다. 

지난 열 달 가까이 코로나에 시달리고 지친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선물 같은 가을 하늘, 저는 요즘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것 같습니다. 


파아란 하늘을 보면 문득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가을이 생각납니다. 

1979년 10월 1일 처음 유학길에 올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열차편으로 찾아갔던 하이델베르크는 아름다운 동화의 나라이자 어느 낭만적인 중세의 도시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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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뒤쪽 언덕 위에는 허물어진 커다란 성채가 있고, 그 고성 위쪽 가장 높은 곳에는 독일연방정부가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위탁해 운영하던 어학원 <ISZ>가 있었는데, 당시 저는 <본> 대학에 신청한 입학 허가서를 기다리며 1년 중 가장 하늘이  맑다는 10월 한 달을 그 하이델베르크 <ISZ>에서 보내며 독일의 가을을 만끽했습니다.


어학원에서 내려다보이는 고성과 마로니에 잎사귀의 고운 단풍이 어우러진 하이델베르크의 가을은 정말 낭만의 극치였습니다. 시가지를 길게 관통하며 흐르는 네카강의 <칼 테오도르> 다리를 건너면 <철학자의 길>(Philosophenweg)이 이어지고 괴테, 칸트, 헤겔, 야스퍼스, 막스 베버를 비롯한 수많은 근세 독일의 철학자, 문학가들이 사색에 잠겨 걸었던 그 유명한 강변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곳곳에 놓인 벤치에 앉아 맑고 투명한 햇볕과 푸른 가을 하늘을 쳐다보며 심호흡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하이델베르크는 원래 대학도시입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체코의 프라하 대학, 오스트리아의 빈 대학에 이어 1386년 유럽에서 세 번째로 문을 연 실로 유수한 대학입니다. 16세기에는 루터파와 칼빈파 간의 신학 논쟁이 가장 치열하게 벌어졌던 종교개혁의 보루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두 계파 간에 첨예한 대립을 보인 주제는 <죄>에 대한 논쟁이었습니다. 루터파는 여전히 윤리적 기준의 유효성을 강조한 나머지 율법주의라는 비판을 받은 반면, 칼빈파는 오직 믿음의 잣대만을 주장함으로써 무정부주의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죄>란 히브리어 <하타>를 가리키는 말로, 이는 <과녁에서 어긋나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쏜 화살이 표적에서 빗나간 게 어째서 <죄>가 될까요? 고대 수렵시대를 생각해 보십시오. 표적을 벗어난 화살이 엉뚱하게 다른 생명을 해쳤다면 그 얼마나 큰 낭패요 비극이었겠습니까? 그래서 히브리인들은 <하타>에서 <죄의 원형>을 보고 이를 신앙의 눈으로 재해석 했던 것입니다. 


고대 동양인들은 또 어땠을까요? 한자에서 <죄>(罪)란 <그물 망>(罒) 부수 아래 <아닐 비>(非)가 합쳐진 글자입니다. 특히 이 <비>(非) 자는 날아가는 새가 서로 등을 지고 있는 모양의 상형문자인데, 그렇다면 이 두 자가 합쳐져서 하필이면 왜 <죄>(罪)가 됐을까요?


마음을 같이 해야 할 존재들이 머리 위로 그물이 덮치는 위기조차도 모른 채 서로를 등지다 한 번 제대로 날아 보지도 못하고 사로잡힌다는 뜻이니 과연 <죄>로 규정해 옳지 않습니까? 


이처럼 동양이든 서양이든 또 고대 히브리인이든 <죄>란 곧 공동체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해치는 빗나간 화살이요, 서로 등을 지고 엇갈리는 반목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신앙도 결국은 우리의 관심과 삶의 화살이 저 파아란 하늘을 꿰뚫고 하나님의 표적을 바로 맞추는 일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 옛날 노아의 가족이 방주 안에서 바라본 비 갠 하늘도 오늘처럼 저렇듯 쪽빛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