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19 11:14

모세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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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약 신명기 마지막 장은 모세의 최후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죽을 때 나이 120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34:7).

반면 열왕기상은 젊은 시절 그토록 혈기 충천하던 다윗의 말년을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하였더라>(1:1).

그런가 하면 또 사무엘상은 사무엘의 스승인 엘리 제사장에 대해 그 눈이 어둡고 기력이 소진되어 마지막에는 제 앞가림조차 변변히 하지 못했다고 전합니다.


그럼에도 모세는 백세를 훨씬 넘기고도 육신의 기력은 물론 정신까지도 여전히 망령들지 않아 백성들을 지휘하는 리더십과 카리스마까지도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모세는 40년간의 긴 광야 여정을 통해 무던히도 마음 고생, 몸 고생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툭하면 백성들이 비난하며 원성을 높였고, 어떤 때는 돌로 치려하기까지 했습니다. 따라서 그런 험한 세월을 살다보면 누구나 성품 어딘가가 찌부러져 당초의 열정은 다 간 곳 없어지고 눈초리는 더욱 남을 의심하는 투가 되어 편견과 오만에 가득찬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죽는 순간까지도 120세의 영원한 청년처럼 눈빛이 총총하고 기력도 정정한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그가 왜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비스가산에 올라 멀리 요단강 너머로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홀로 고독한 최후를 맞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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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유명한 <가데스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가나안 땅이 지척인 가데스에 당도한 이스라엘이 진을 치고 아무리 찾아 헤맸으나 어디에도 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소요가 일고 백성들이 몰려와 모세를 비난하고 성토했습니다. 마실 물이 없다는 것은 어쨌든 그 공동체의 리더가 해결해야 할 가장 절박한 현실적 과제이자 생존의 문제입니다. 모세도 다급하여 땅에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다고 했고, 하나님도 신속하게 응답하시며 비교적 간단한 처방을 내리셨습니다.

<지팡이를 잡고 백성들 앞에 서서 저 바위에 명하라 그리하면 바위가 물을 낼 것이라>

 

자신의 지도 노선을 규탄하며 반기를 든 백성들의 소의가 괘씸해 분을 억누르고 있던 모세가 하나님이 지시하신대로 지팡이를 들고 백성들 앞에 나섰습니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그 다음이 문제였습니다. 느닷없이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며 벼락같은 분노를 폭발한 것입니다. <패역한 너희여><이 나쁜 놈들아! 이 죽일 놈들아!>하는 극도의 악담입니다. 그동안 꾹꾹 참고 눌러 온 울화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며 원색적인 욕설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문제 해결의 기회를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처리하는 분풀이의 장으로 만든 꼴이 된 것입니다.

 

그는 계속 <그래, 내가 너희를 위해 이 바위에서 물을 내랴?>며 빈정댔고, 마치 물을 내는 기적이 제 손에 달린 양 거드름을 피웁니다. 그러고는 그것으로도 아직 성에 차지 않다는 듯 지팡이를 높이 들어 바위를 두 번이나 후려쳤습니다. 물론 모세의 그런 혈기 방자한 행위와는 관계없이 바위에서 생수가 터져 콸콸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곧 모세를 향해 청천벽력과도 같은 선고를 내리십니다.

<너는 이스라엘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았으므로 이 백성을 데리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리라>

모세인들 왜 할 말이 없었겠습니까? 툭하면 작당하는 백성들을 참고 참다 딱 한 번 터트린 감정인데 너무 가혹하다, 나는 아직 청년처럼 짱짱한데 벌써 이 광야에서 죽으란 말이냐며 왜 항변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의 그런 탄원을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언제나 백성들의 어리석음보다도 지도자의 대응자세를 더 문제 삼으시는 하나님의 뜻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백성들의 불의를 응징하는 과정에서 지도자가 도리어 분노와 불의에 빠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가당착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당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모세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나안에 들어갔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자기 뜻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누구든 가차 없이 제거해버리는 전제군주나 다름없어지고, 또 모든 공적은 자신이 독차지하면서 책임은 모두 백성들에게 들씌우는 못난 지도자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백성들은 또 얼마나 시달리고 불행했을까요? 그래서 하나님이 120세임에도 아직 청년같이 싱싱했던 모세의 일생을 그 광야에서 마감케 하신 것입니다.

 

백성들은 지도자를 힐난하며 <옛 시절이 좋았다>고 애굽을 그리워하고, 지도자는 백성들에게 받은 상처로 속이 부글부글 끓어 날마다 <패역한 무리>라며 분을 삭이지 못하는 시대, 영원한 청춘이었던 모세의 뼈아픈 실패가 오늘 이 나라 지도자들과 우리 국민 모두에게도 두고두고 큰 일깨움이 되기를 간절히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