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07 23:17

사다리 걷어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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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 걷어차기>는 미국 프로레슬링 단체인 WWE의 래더 매치에 단골로 등장하는 경기 방식입니다. 링 중앙 높은 곳에 챔피언 벨트를 걸어놓고 누구든 먼저 올라가서 그 벨트를 차지하는 선수가 챔피언이 되는 겁니다. 따라서 앞서 올라가는 선수는 뒤따라오는 선수를 막아야 하고, 아래에 있는 선수는 사다리를 걷어차거나 밀어서 앞선 상대가 그 벨트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방해해야 하는데 전에는 숀 마이클스와 레이저 라몬 같은 선수가 팬들에게 큰 임팩트를 주며 사다리 래더 매치의 명장면을 많이 연출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오늘 여기서 말씀드리는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란 1990년부터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장하준의 책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원래 영어로 집필되고 출간된 경제학 서적인데 다시 형성백이라는 한국인에 의해 우리말로 번역되어 국내에 소개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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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교수는 한국어판 서문 첫 구절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 나는 후진국들에 대한 그들(선진국)의 ‘설교’가 얼마나 위선적인가를 드러내고자 했다.> 그렇습니다. 이 책은 선진국들의 일방적인 갑질과 가증한 횡포를 생생하게 고발한 책으로 거기서 장 교수가 말한 <사다리 걷어차기>란 남보다 먼저 사다리를 타고 높은 곳에 올라간 사람이 고의적으로 그 사다리를 걷어차 다른 사람이 올라오는 것을 막는 비열한 행위를 가리킵니다. 


과거 선진국들은 철저한 보호관세와 정부 보조금 등으로 자국의 산업을 육성 발전시켜 왔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후진국들에게 자유무역을 압박하고 보조금 철폐를 강요하며 이중적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은 보호무역이라는 사다리를 타고 높이 올라갔으면서 그 뒤를 따라 오르려는 후발 국가들에게는 철저한 자유무역을 요구하며 올라오지 못하도록 막는 짓이야말로 전형적인 <사다리 걷어차기>요 <후진국 죽이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 정부와 여당이 내놓은 주요 정책들, 즉 부동산 안정, 정규직 전환, 주식 양도세 확대 등의 금융세제 개선안 등이 다 국민의 계층 상승의 희망을 원천적으로 꺾는 이른바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원성이 높습니다. 이미 저만치 올라간 고위 관료들과 가진 자, 기득권자들이 후발 서민들은 아예 발도 들여놓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걷어 차버리는 극단적인 서민 죽이기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청와대와 정부, 국회에 포진한 다주택자들 혹은 강남에 <똘똘한 한 채>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부를 증식해 온 사람들이 주택 정책을 주무르며 교묘히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어 막차라도 타려던 서민들과 청년들의 시장 진입이  좌절됐다며 허탈해 하는가 하면 졸지에 투기꾼으로 몰려 범죄자 취급을 당했다며 분통을 터뜨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모든 저항이 상당 부분 오해요 과장이요 정부의 갑작스런 고강도 규제와 증세에 대한 반발이라고 보지만 결국 이런 혼란스런 상황에서 피해를 떠안는 계층은 언제나 사다리의 맨 밑 부분을 힘겹게 부여잡고 하루하루를 고단하게 살아가는 다수 서민들이라는 사실을 정부 여당이 꼭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누구는 이미 너무 많이 가졌고, 누구는 그게 언감생심인 세상, 부디 모든 이들이 <사다리 걷어차기>가 아니라 <사다리 걷어차지 않기>가 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임을 깨닫게 되는 날이 오길 그저 진심으로 기도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