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13 11:10

순교자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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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신비적으로 참여하는 의식이라면, 순교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완전히 연합하는 사건이다>(오리겐 AD 185-254, 순교자의 아들이자 교부로 알렉산드리아 학파를 대표하는 초대 기독교의 저명한 신학자).


기독교는 초기 약 280년 동안 참 모진 박해를 받으며 수많은 순교자를 냈습니다.

그럼에도 순교란 결코 초대 교회나 박해 시대의 산물만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순교 신앙은 2천년 교회사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계속 이어져 오며 언제나 교회를 교회되게 하고 신자를 신자되게 한 신앙의 진정한 초석이었습니다.


오리겐은 <영적 순교>라는 말을 통해 <꼭 피를 흘리고 목숨을 버리는 것만이 순교가 아니라 신앙을 위해 고난을 당하고 불이익을 받고 질시와 비난과 경멸을 당한다면 그 자체가 이미 순교적 삶>이라며 순교의 개념을 보다 폭넓게 해석했습니다. 오리겐의 이런 정의는 <순교 신앙>이 오늘날에도 매우 유효할 뿐 아니라 모든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계속 이어가야 할 소중하고도 값진 신앙 유산임을 깊이 깨닫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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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소개하는 <순교자의 편지>는 주후 107년에 순교한 로마 치하 수리아(시리아)의 안디옥 교회(11:19) 감독 <이그나티우스>(Ignatius, 35-107)의 글입니다. 그는 트라얀(Trajanus) 황제 때 체포되어 로마로 압송 당했는데, 소아시아를 거쳐 로마로 호송되는 동안 7통의 편지를 남겼습니다. 그것은 소아시아 교회들과 후에 역시 순교자가 된(155) 서머나 교회 감독 <폴리캅>에게 보낸 것이고, 마지막 한 통은 당시 자신의 구명운동을 펼치고 있던 로마 교회에 보낸 글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로마 교회 성도들이여, 나는 기꺼이 주님을 위해 죽을 것입니다. 제발 나의 이 길을 방해하지 마십시오. 간곡히 당부합니다. 제게 전혀 적절하지 않은 이같은 호의를 베풀지 말아주십시오. 그냥 맹수들의 먹이가 되도록 버려두십시오. 이 일을 통해 저는 세상이 아닌 천국을 얻게 될 것입니다.


저는 베드로와 바울, 저의 스승이신 요한 같은 사도가 아닙니다.

그저 비천한 그리스도의 종일뿐이니 다만 영광을 얻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저는 한 알이 밀입니다. 이제 곧 맹수의 이빨에 갈리어 가장 순수한 하나님의 빵으로 새롭게 태어날 것입니다. 그러니 로마의 형제들이여, 거듭 부탁하건대 나를 살리려 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께 속하기를 바랄지언정 세상에 나를 넘겨주지 마십시오.

나로 하여금 순전한 빛을 받게 해주십시오. 부디 하나님이 주시는 십자가의 고통을 마지막 순간까지 느끼며 천국에 도달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절 도와 주십시오!...>

 

그의 간곡한 바람대로 이그나티우스는 1079월 어느 날 자신이 자작한 순교의 노래를 부르며 처형장인 로마의 원형극장 콜로세움으로 향했습니다.

 

<불도 좋고 십자가도 좋으며 / 굶주린 맹수도 좋고 / 내 사지를 찢어도 / 내 배를 가르고 / 팔다리를 자르고 / 내 온몸을 난자해도 좋습니다 / 오직 그 길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로 / 갈수만 있다면 / 그 모든 게 수치가 아니라 / 최고의 영광일 것입니다 / 내가 원하는 것은 / 오직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 우리를 위해 부활하신 / 그 분 뿐입니다 / 내 때가 가까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