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6 10:42

엄혹한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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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세상을 온통 뒤집어 놓았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코로나19> 이전의 삶이란 없습니다.

2020년 초 홀연히 닥친 <코로나19>가 그 가공할 침습력 만큼이나 빠르게 지구촌을 패닉에 빠뜨렸습니다심지어 신앙생활 자체예배 자체가 곧 남에게 가해 행위가 될 수도 있음을 확인하는 요즘입니다.

원래 <거리 두기>, <마스크등은 다 <불통>, <고립>, <경계>와 <소외>의 상징 같은 것이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이웃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남을 배려하는 사랑의 실천생명을 지키고 공동체를 보호하는 필수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교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따갑고 지금도 계속 터져 나오고 있는 교회의 집단 감염은 개신교에 대한 사회적 반감을 더 증폭시키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그것은 이웃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모험하는 이기적 신앙 행태를 용납할 수 없다는 비난입니다이제 우리는 더 이상 신앙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교회생활도 예전 같이 그저 습관처럼 할 수 없게 되었고심지어는 기침이나 재채기 같은 생리현상 마저도 자칫 이웃을 치명적으로 해칠 수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역설적으로 <코로나19>는 지금 우리 시대우리 사회의 문제점 들을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있습니다자연과 환경 파괴가 결국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경제성장물질적 풍요이기적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이룩한 서방 선진 사회의 실상이 어떤 것인지신뢰와 배려가 없는 사회야말로 팬데믹 같은 위기 앞에서 얼마나 허약하고 분열적인지참된 희망과 위로와 용기를 주지 못하는 종교와 신앙이야말로 재앙 앞에서 얼마나 무력하고 모순적인지제대로 된 리더십을 갖지 못한 사회와 공동체는 <코로나19> 같은 국가적 위기가 닥쳤을 때 얼마나 지리멸렬하는가를 똑똑히 보고 처절하게 배우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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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사회적 거리두기>에 앞서 <세상과의 거리두기>, 이웃과 더불어 살기 전에 <하나님 앞에 홀로서기>를 더 먼저 실천해야 옳은 사람들입니다. <거룩한 삶>이란 곧 세상세속과의 <구별된 삶>을 뜻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예배의 의미와 그 소중함을 깨닫기 위해 이제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합니다우리의 일상적인 삶이 곧 예배고 기도고 감사의 찬양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예배가 우리에게 주는 위로와 힘기쁨과 용기를 더 확장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이 곧 예배가 되어 옳다는 것입니다주님의 안식일 파괴(눅 6:1-10)는 안식일을 부정하신 게 아니라 안식일의 지평을 평일까지 확대하심으로써 안식일 뿐 아니라 평일도 안식일처럼 거룩하게 살라는 메시지에 다름 아니었습니다또한 예루살렘 성전을 허물라(요 2:19)고 하신 것도 성전을 부정하신 것이 아니라 성전의 지평을 온 세상으로 확대하신 것이었습니다.

이 코로나 시대에는 만인이 사제가 되어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송해야 합니다앞으로도 우리는 계속 코로나의 변종이나 신종과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따라서 이런 코로나 시대의 예배법에 보다 능동적으로 적응할 필요가 있습니다사실 인류의 모든 감염병은 그간 일방적으로 당해온 자연의 보복이자 응징이라는 은유는 결코 틀린 말이 아닙니다코로나 바이러스도 인간의 이기심과 왜곡된 욕망을 숙주로 전파되고 있음이 분명하잖습니까.

<코로나19>는 우리의 그런 삶의 방식이 이제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하나님의 최후 경고음이 아닐까요?